20년전에 죽은 이와
10년전에 확인했어야 할 약속이
오늘 또 나는 무얼 약속하며 목숨을 잇고 있나
10년 후
30년전의 약속으로 다시 돌아와
넌 사는게 무어냐고……
모든 비롯함은 없음에서 하나로 나온다 |
그 하나를 세가지로 끝없이 나누어도 다함이 없다 |
첫째 한가지는 하늘이며, 둘째 한가지는 사람이며 셋째 한가지는 땅이라 |
하나하나가 모여 열이되나 짜여진 틀 없는 셋으로 나아가 |
하늘이 두가지로 셋 되고 , 사람이 두가지로 셋 되고, 땅이 두가지로 셋 된다. |
나아가 셋 짝은 여섯이 되고, 일곱 여덟 아홉을 낳고, |
셋과 넷을 굴리고 다섯과 일곱을 고리 이룬다 |
하나의 깊은 힘은 만번 오고 가도 그 쓰임은 변하지 않으며, |
그 마음 바탕은 해와 같이 밝으며, 사람의 가운데에 하늘과 땅이 하나됨이라 |
모든 끝은 하나되어 없음으로 돌아간다 |
中 | 本 | 衍 | 運 | 三 | 三 | 一 | 盡 | 一 |
天 | 本 | 萬 | 三 | 大 | 天 | 三 | 本 | 始 |
地 | 心 | 往 | 四 | 三 | 二 | 一 | 天 | 無 |
一 | 本 | 萬 | 成 | 合 | 三 | 積 | 一 | 始 |
一 | 太 | 來 | 環 | 六 | 地 | 十 | 一 | 一 |
終 | 陽 | 用 | 五 | 生 | 二 | 鉅 | 地 | 析 |
無 | 昻 | 變 | 七 | 七 | 三 | 無 | 一 | 三 |
終 | 明 | 不 | 一 | 八 | 人 | 櫃 | 二 | 極 |
一 | 人 | 動 | 妙 | 九 | 二 | 化 | 人 | 無 |
禁 相 爛 途 淸 心 無 之 栽 陸 轄 明 功 神 求 無 大 四 ▣
觸 雜 寒 曰 壽 氣 厚 眞 物 遷 七 暗 完 攸 子 漏 德 方 蒼선비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으로 사전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으며
일반인들이 알기로 이와 같으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선비 : [명사] 1. 지난날,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 2. ‘학덕을 갖춘 이, 또는 학문을 닦는 이’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 3. ‘어질고 순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출처: Naver국어사전 >>
이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현대사회에서 “선비”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그것은 옛날 답답한 시절 고루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의 모습쯤으로 알고 오히려 폄하적인 반응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에부터 나의 선비에 대한 생각은 시작된다
그럼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건가?
일반인이, 사전에, 알고 있는 것과 기록된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이렇게 잘못된 인식의 원인은 우리의 교육에 기원된 것이라
'선비'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것인 것 쯤은 다들 알고 있지만
어느 때부터 이 말이 쓰여 졌는지, 지나(중국)에서 유래 되었는지, 순수 우리겨레의 것인지
아무도 모르며, 그러기에 그 개념 더더욱 알 길 없다
먼저, 지나의 "선비 사(士)"의 개념과 우리의 선비는 그 어원의 출발부터 다름에도 불구하고
처음 우리의 선비 개념이 공자의 학문이 전래된 천여년 세월에 지나의 그것(士)과 혼용되거나
아예 지나의 士의 개념으로 둔갑한 상태이다.
선비란 지나의 士가 아니다
선비란 지난날 골방에 틀어 밖혀 책벌레가 아니다
선비란 경제력 없어 굶는 생활이 다반사인 그런 인물상이 아니다
선비란 시대를 무조건 거부하며 초야에 묻혀 지내는 학자가 아니다.
선비란 어질기만 하고 제것도 못 지키는 그런 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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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露가 지나고 이틀 잠 못드는 이의 귓가에는 아직 가을이 이른데 가을엔 뀌두라미 울움 뿐이더냐 온갖 잡벌레 소리 잠들고 싶은 이의 안면방해가 심하다. 그래, 세상이 변하니 풀벌레인들 변종이 없으랴 뀌뚜라미 사촌도 있을 꺼고 뀌뚜라미 오촌도 있겠지 오늘을 사는 나 나도 변종이 되고 싶다 |
가만이 있어도 서글픈 때이거늘
뒤뜰에 桃花 빗물에 떨구니
님께서 허락하신 밤
千年의 기억인 듯 아득하오
살아선 다시 못 볼 그림이기에
달도 없는 이 밤
그대 땅속의 시간이
내 호흡으로 살아 오른 듯 하오
열기 가득 내 호흡을 가누던 그 숨결
사람 없는 밤거리에 지금
물기 흥건한 흙내음으로부터
다시금 일듯 하오
물길에 흩트러지는
기억 못할 언저리에 쌓여가는
오늘은 살아있음은 생명과의 만남 산자의 호흡처럼 시간과 기억은 어수선한 세월은 |
해질녁이라 생각되는 어둑한
하늘은 시각을 알수 없다.
오리나뭇잎에 묻은
빗물은 바람에 다시 뿌려지고 있다.
산아래 집은 먼데
신발은 질퍽이고 있다.
입술까지 새파랗게 젖게하는
비에 나는 느끼고 있다.
삼십년이 묻어가도
느낄수 있는 비는
따스한 구들목이 있다.
1996.07.19.
1996.06.10.
초저녁 선잠이 취기에 기대어 누우려는 심사 헛되이 다시 살아도 곱절의 시간인데 가뿐 호흡을 이어갈 이에게 남은 시간 형의상학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