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5

코발트광산 학살(보도연맹 관련)현장 탐방

봄날 점심나절 차안은 약간 더운듯하나 에어콘을 켜기에는 추운 날씨다대구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지만 누구에게나 알려지지 않은 장소라 가는길을 물어 간 곳은 경산시에서 용성 방면으로 가다가 미래대학교를 지나 평산리 동네 뒷편 파티마재활요양원에 도착하니, 탐방행사를 주관하는 평화재향군인회 전세차량이 막 도착한 듯 삼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폐코발트탄광이라 해서 산속 외진 곳이라 생각했는데 탄광 갱도 입구는 파티마요양병원부지 한켠에 자칫 요양원 건물에 파묻힐 뻔하게 위치하고 있었다.(2010현재 광산 수직갱도 윗쪽 40m에 인터불고경산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갱도 입구에서 북쪽으로 내려다 뵈는 경산시 압량벌은 60년의 세월이 어지러운 지역개발이 말해 주는 듯하다
갱도 입구는 현수막에 가려 있었고 역사현장으로서 보존 또는 관리를 위한 시설이라고는 현수막 뒤 철문과 비탈진 산에 유족회 사무실로 쓰는 컨테이너 창고가 전부였다.

 굳게 닫힌 저 철문 안으로 57년전 3,500여명의 억울한 유골이 아직도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에 아무리 생각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수 있는 일이 아닌데, 폐탄광 지역이 사유지(파티마 요양병원)라는 이유로 갱도 입구 위쪽과 왼쪽으로 10여미터 남겨 두고 요양병원 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며, 갱도 입구 아스팔트로 포장된 마당은 요양원 주차장이였다.
3,500여명의 이유 없는 죽음, 방치된 유골을 위로하는 것은 갱도 철문 위 벼랑에 핀 철쭉의 모습처럼 애달펐다

탐방지 행사는 평화재향군인회(대표 표명렬)를 주관으로 시작하여 6.25전후 민간인학살과 관련한 유족회(대표 이태준) 및 직관접적인 당사자와 학살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분의 소개와 민족문제에 늘 열정을 가지는 김원웅 국회의원의 소개가 이어지고, 유족으로부터 증언을 듣는 순서로 이어졌다.

첫번째로 증언에 나선 분은 팔순에 이르는 할머니의 증언은 울분어린 목소리가 장내를 숙연하게 하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끌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설명되지 않는 죽음이 저 폐광안에 아직도 누구의 뼈골인지 알수 없는 상태로 널부러져 수습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과거가 아니라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학살의 진행형임을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 증언인으로 나선 60전후 되었을 아주머니 한 분의 증언 중에

같은 조건에 있는 친구에게 함께 나와 증언하자고 권하는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내 아버지가 도둑놈 강도였다는 게 낫지 빨갱이는 싫다”는 말이였다고 했다.

그리고 유족회와 관련하여 지난 50여년 시간 가운데 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이 이승만정권이 물러간 4.19이후 잠시 이루어져 위령제까지 최초로 치루었으나, 다음해 5.16군사 구데타를 일으킨 박정희가 정권을 잡은 후, 유족회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도리어 수감되어 15년, 10년형을 징역형을 받고, 최초로 코발트광산 학살사건을 취재하고 언론에 보도하였던 전 대구매일신문기자(강창덕 80)였던 분은 7년여의 징역형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나서 40여년 침묵 속에 묻힌 사건이 되고, 침묵의 결과는 피를 이은 자손이 억울하게 죽은 원혼을 달래기는 커녕 강도보다 더 못한 치욕으로 느끼도록 세뇌되었다

경산코발트광산 학살지의 학살 규모는 대구형무소 미결수감자 3,000여명과 경산,청도 인근의 보도연맹으로 임의 동행되어 학살된 500여명을 합쳐 3,500여명으로 학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보도연맹 학살지로는 대구 본리동 대구 가창 골짜기 청도 곰티재 등 수많은 곳에서 자행되었으며 경산코발트 폐광산에서 대규모로 자행 되었다

최초 취재 보도했던 기자 분도 당시 사건이 일어난지 10여년 밖에 되지 않아 인근 동네주민들로 부터 증언을 듣기에는 몹시 어려웠으나 가까스로 알아낸 건 학실이 진행되던 1950년 8월이던가 당시 10일 기간동안 하루 10여대 군용트럭이 민간인을 태우고 트럭 앞뒤 양 끝에 헌병 감시하에 코발트 광산 쪽으로 올라갔고 매일같이 산위에서 총성이 이어졌다고 했다.

학살의 방법은 광산의 수평갱도 안쪽 50미터 지점에 산위로 수직갱도가 뚫려 있는데, 수직갱도 위에서 줄을 세워두고 충살하며 쓰러져 수직갱도 아래로 떨어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떨어진 시신 위에 다시 확인 사살을 가하고 기름을 부어 넣어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유족회의 증언이 끝나고 방치된 유골 현장을 보기 위하여 갱도입구 철문을 열었다. 갱도는 지하수가 10~20센치 고여 있어, 유족회에서 준비한 장화를 참석한사람들 하나둘 갱내로 들어갔다. 갱내는 허리를 굽혀 간신히 들어설 수 있어으며, 갱도 중간에 유리상자에 수습한 유골 몇 점은 진열되어 있었고 수습되지 않은 유골의 위치는 안쪽으로 50미터 수직갱이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수직갱이 무너져 내린 돌덩이와 유골이 범벅이 되어 쌓여 있었다.



유골은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채 학살의 시간으로부터 멈춰 있다.

사건의 진상도 1년전(2006년 4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정부 공식기관으로서는 사건 후 56년만에 최초로 조사되었고, 아직 구체적인 발굴계획도 배상 계획도 아니 학살된 사람들 명단조차도 제대로 찾지 못한 상태이다.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유골은 과거사가 아니라 해결하지 않은 현재의 사건이며, 이와 같은 학살을 명백히 규명하고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명예회복을 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여겨진다.

  역사의 과정에서 전쟁은 자의든 타의든 피할 수 없는 과정 이었으며, 앞으로도 전쟁이 없다고는 누구도 장담 못하 듯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이와 같은 민간인 학살이 이보다 더할 것이라는 건, 동남아의 킬링필드, 보스니아 내전 등 동족상잔의 성격을 띤 전쟁의 비참함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여기 억울한 죽음의 명예회복은 대한민국의 역사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대한민국 미래시대에 다시 혼란이 찾아 오더라도 흔들림이 없는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절대 절명의 이 시대에 살아남의 후손의 사명이다

  유골이 뒤범벅되어 있는 돌무더기 위에 석회석 동굴도 아닌데도 맺혀 있는 종유석은
원혼의 뼈가 녹아 내려 종유석이 되고, 그 끝에 맺힌 물방울이 천년을 이어갈 눈물 되어
바라보는 나로 하여금 숙연해지도록 한다.
( 실제 일반 석회암층이 아닌 퇴적암층에는 석회석 종유석과 석순이 생기지 않는데, 여기 갱도 안에는 아래 그림과 같이 작은 종유석이 보이는 것은 수직갱도에 수없이 많이 쌓인 뼈가 지하수에 석회성분이 녹아 갱도 청전에 묻어 나와 종유석이 되었지 않나 여겨진다)


2007.04.15

2007-04-09

봄날

산도 들도 흙바람

봄가뭄 더 없는 따사한 햇살로
시간은 길게 뉘인다

어느때 어느 순간에 떠남이
닥칠지 모르는 시간시간이 오늘을 잇고

당신 가는 길이 서글픈 건가
나 가는 길이 서러운가



2007-03-19

아버지

 열네달 전 부푼 배가 쥐어짜는 통증에는 그나마 홀로 가눌 수 있었다 

기능성 소화장애…낫게할 수 있는 약은 없다 
그저 완화된 통증만을 기대하며 
지난 여름 워낙에 헐은 곳 많아 그러려니 한 종기 하나가 
가을 지나고 커져 피고름 쏫아내어 
불가능할 것 같은 전신마취 견디면 떼어낸 결과 
피부암이였다…잔존하는 건 방법없다 

설쇠고 더욱 떨어진 기력은 
마려워도 나오질 않는 벌써 일주일 
그 답답함을 아니 모른체 할 수 있으랴 
오랜 질병휴유로 형체 무너진 손발이  
다시금 부어 오르고 야윌대로 야윈 
살갖이 헐어 팔꿈치 뼈를 스치우는 통증에 
더 이상 일그러질 표정도 잃은 얼굴에 
홀로 지을수 있는 건  
가득 고인 눈물 뿐이런가 

보청기 볼륨 아무리 높혀도 알아 들을 수 있는 말 몇 안되고 
혼자만의 말씀만 되뇌인다 
나 죽거든…… 

골다공증과 뇌경색 휴유증을 있는 어머니의 간병은 
기도의 힘마져 지칠대로 지쳐가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살아 있다는 것을 축복인가… 

2007-01-16

보호자 대기실

동산의료원 4층 수술실 보호자 대기실

ㅇㅇㅇ 68 흉부외과…… 수술중
ㅇㅇㅇ 77 외과(혈관이식) 수술중
ㅇㅇㅇ 28 부인과……. 수술중
ㅇㅇㅇ 7 성형외과…… 수술중
ㅇㅇㅇ 34 신경외과…….회복중
모니터에 스크롤되는 글자가 들릴듯
삼십명 남짓 모여 있는 공간에 정적이 누른다

밤새 간병한 흔적이 역력한 부시시한 차림에
밀납같은 표정이 흐른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과 생사의 흐름은
모니터 뒤 벽넘어 불안한 상상에 두고
회복이라는 글자에 입술이 타도록 기다린다

한시간-두시간-세시간
벽넘어 호흡기계 돌아가듯
보호자 대기실 호흡 또한 계산되고 있다



2006-12-20

관계

잊어버린 공간만큼이나 멀어진 시간이라
목적보다 수단에 치우쳐 공유되었던 세월
매립된지 오래이고

거짓이라 할 수 없지만
너에게서 나의 정체성없어
목적은 빛바래고 수단은 구차하다

친구여
어쩌면 나는 너를 적으로 삼아야
너를 목적하는 바 될것 같아
다시는 너를 찾지 않겠다

2006-12-09

하루

피곤하다…. 그래서 편하다 )

2006-12-05

겨울 강

 겨울

얼지 않는 강바닥에
겨울바람 쓸려간 자국

그 쓸쓸한 기슭에
남겨진 지난 여름 홍수 물자국
황토물 가득 넘치며 내지르던 강물은
아득한 시간이 되어 기억 되고

여름날은
쓸려 간 것일까
흘러간 강물이라



2006-11-10

마른 잎

마르지 않으면 썩을 꺼나
썩지 않으면 말라야 겠지

질펀한 여름의 기억은
어둑스레한 십일월 저녁 비에
수치스러움인양 내팽겨쳐지고
잡스러움으로 버려진다

떨지 못할 이파리 있으랴
새록새록 남겨진 기억마져
시린 바람에 가냘프게 떨어질듯
애끓이는 시간만 더하다

겨울이 오면
질펀한 현실 없어도
한 잎 생각으로 다시 볼거나



2006-10-24

잎새

 더는 푸르를 수 없지만

아직 마르지 않은 살이라

차거움에 호흡은 멎었지만
아직 막히지 않는 물기 어린 줄기라

얼마의 때가 남았을까

저무는 노을마다 하루를 세는 날이
길게 뉘어서라도 세우고 싶은 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