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30

공허

 돌아서는 길 한참을 바랜

수십년의 옛날이 그러하듯
옛 이야기를 읊조리기엔
당장의 모습이 무엇으로 먹고 입고
무슨 모습으로 무엇을 해야하나
품어도 온전한 내 것 아님은
처음부터 그러하듯
영영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라
차라리 순간의 무얼할까에
끝없는 질문과 대답만이
답 없는 공허를 비껴서
또한 세월을 채우는 것이겠지
아무것에도 기대하지 않지만
깊어가는 공허는
시간에 홀로 세우는 각이어라

2008-03-27

봄날

 봄은 왔습니다

작년에 옮겨 심은 매화 꽃피고
냉이꽃 하얗게 덮인 텃밭에 햇살 따사로운
봄은 여전하게 보여지는데

하늘에도 텃밭에도 정지화면 같아
들려오는 건 완전히 비어 있어
들을 수 없는 봄인가 봅니다

지난 해 어머니 아버지
정지된 봄 날을 두고 가고 가시듯이
햇살은 허허로움으로 흐를 것입니다

치열한 봄이고 싶습니다
소리쳐 부르짖는 봄이 되고 싶습니다
나 사는 동안 이 적막이 아니라면

고통 중에 시간도 감사하다 하지만
그 시간도 이제도 두 손 놓고 있었음에
봄 날의 긴 한숨됩니다



2008-03-16

무색하다

 생존에 의해서 주어진 시간을

생존을 위해서 써야기에
생존(Being)의 의미가 무색하다
주어진 꼴(現實)을 탓하기엔
주어진 짓(時間)이 무색하다
인간의 계획이 무의하다 하지만
순간에도 계획하려 선택하는
고민에 현실은 무색하다
계획은 내 권한 밖에 일
다만 향(定向)하는 순간도
느끼는 것에 충실일 뿐
탓할 꼴 보다는
주어진 짓에
느낄 수 있음이 고마울 뿐
생존을 위해서 가 아니라
생존이 쓰여지는 것이
나의 가짐(Having)이기에
무색함도 의미 되어
무엇이든 아니 할 이유 없다

2008-03-10

하루-2

 봄을 잊고 그리움을 잃어버린 시간

그대 일상이라 부를 하루에 있었다
끝내 다하지 못할 시간은
홀로 새우는 밤에 머물고
낮은 온도에 조절되는
보일러 연료처럼 오래이고자함은
시간에 대한 오만함일까
더없을 시간으로
오늘을 끝장내는 처사가 옳을까


2008-03-05

산자의 호흡

질병으로부터 구하시고…
늦은 밤 홀로 세우던 기도마저

단절의 시공간에 막히고
어이 돌아 내린 세월이
축복일 수 밖에 없는데
질병도 축복 가운데 있음인가
주저할 수 밖에 없는
질병으로부터 구하는 기도는
기막힌 꼴로 지어지는 것일까
서성이는 불안이라
무엇으로 구할까
고통도 산자의 증거이니
나 구함은 함께하는 호흡이라

2008-03-04

쓰라리다

 바람에 쓸리고 추위에 말리어

빈들에 저 홀로 버팀이
차라리 홀로이기 다행이거늘

쓰라림은 사르지 못할 유업이기에
창백한 시간 끝모를 앓음이라

숨이차는 하루 내일에 넘기지만
결정권 밖의 내일이기에
내미는 손 누구인들 반가울수만 하랴

아니라

청산하지 못한 건 내미는 이도 마찬가지
사르지 못할 것처럼 버리지 못한 유업은
빈들에 홀로 버티는 이의 호흡이거늘
창백한 시간에 건지지 못하는 이의 쓰라림이라



2008-02-19

봄에 드는

얼었던 땅이 보풀하니
딛는 발자욱 봄이련가

찬바람에 시린 가지 그대로 인데

봄은 옵니다
살가운 손길로
이른 봉우리 터트리는
봄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너무도 이른 봄은
찬바람에 꽃잎이 얼어 버릴까
나는 밤새 아파합니다


2008-02-15

길2

 길은

걷는 이에
길이 된다

길은
찾는 이에
기억 된다

길은
걷는 이에
살아 있다

오랜 비바람에 설은 길
새로 들이어야 길 되어
내 앞에 놓였다

나는 걷는다


2008-02-13

충분조건

 천년을 이어온 꿈

꿈있는 현실은 행복이라

꿈이 현실이 되다
아니라 깨어진 꿈이라

꿈은 더 없다
더는 꿈있는 현실이 없다

꿈은 욕심의 필요조건이 되고
욕심은 현실의 충분조건이 되었다



2008-02-12

호접몽(胡蝶夢)

 화사한 봄날 나비 나른다

하늘 맑고 바람 부드럽다

노오란 꽃잎에 노란나비
꽃잎에 꿈꾸는듯 취한다

나비의 꿈에 나인가
나의 꿈에 나비인가

눈물은 꿈이 아니라
취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견디어야 할 찬이슬이라

새벽이 지나 젖은 날개 털며
나비는 나를 꾸며
나는 나비를 꾼다




2008-02-08

질경이

 누가 너를 밟았는가

행길에 앉은 너 잘못인가
짓눌린 가슴팍을 추스리며
우러르는 하늘이 너무 맑다

노고지리 놀던 하늘에
따사롭던 봄바람이 즐거웠던 기억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찢어져도
맨몸으로 버티어야 할 시간 뿐 이런가

내 너를 행길에 두지 않았는데
어느 새끼가 너 있는 자리 행길 삼았던가
막아 서지 못한 세월이 야속하다

내 무엇으로 따사롭던 기억과
노고지리 노래 소리 들려 줄까
저버릴 수 없는 질긴 인연의 끈으로
행길에서 홀로 기다리는 너를


송아지 팔던 날

 송아지 팔리는 날

어미 소는 아침부터 설쳐 댄다
송아지 팔고 난 며칠 동안
어미 소는 종일 울어 댄다

송아지는 어미 소의 소유가 아니었다
젖 주고 핥아주어 키웠지만
제 몸조차 제 것이 아니기에
이별은 경험할 수 없는 기정사실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