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3

어는 비

어는 비는 내리지 않는다

겨울 응달에 쌓인 눈
얼마간 겨울비에 녹지 않는다

불꽃같은 사람의 뉘에
시간만 급하다

겨울비는 마르지 않는다

밤이 되고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대로 부여 잡을 수 있는 겨울이라면
좋겠지

멈춘 시간 멈춤 고요
눈이 아니더라도 하얀 밤은
다시 휑한 아침에 지워지겠지

가만히 두어도
어는비는 마를꺼라

2013-01-16

트지 않아

 마르다

넉넉한 때와 곳이라도

트지 않는 건 멈춤인가
걸음은 헛되어 제자리

어디로든
봄은 오겠지

내가 트지 못한
몸에
까끄라기 날리다


2012-12-19

2012-11-19

좋은 것

 따스함이 없더라도

춥지 않으면 살만한 것

기쁨이 없더라도
슬프지 않으면 되는 것

즐거움이 없더라도
괴롭지 않으면 좋은 것

여러번 선택된 모습을
좋아한다 한다

좋아한다
좋아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용납하는 것일지니
받아 들이는 것일지니

좋은 것은 없다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내게 있으니
있을 뿐이고

나 거기에
춥지 않고
슬프지 않고
괴롭지 않으매
고마울 뿐이라


2012-11-03

그리움

 누군가 있을꺼라

둘러보는 꿈결에 깨어나다
잔디 마당 찬서리 발끝에 닿으니
기울어가는 새벽달이 더 시리다

사랑
누군가 사랑이 삶일지라
달빛을 가르는 담배 연기
산너머 기차소리 조차 멈추고
밤새 기도 소리 그 어디에 흐르는가

나를 사랑하던 이
이제 어디서 이 새벽을 가르는
나를 위한 기도 소리 들을까

창백한 달빛은 솔숲에 가리워지고
아직 이른 새벽 가로등불 대신하는 때에
누군가는 없다

나를 사랑하던 이
안산에 누우신 뒤론 다시 못 들은 기도
내 당신 사랑이 그립습니다



2012-10-23

켜켜이 재워

인적 없는 동네 어귀 넓은 길에

한 개비 지푸라기마저도 바람에 쓸리고

비닐 들판 저 멀리 낮은 산허리에
시월의 해는 힘없이 드리울 때.

안산 밭 덤불엔
빛바랜 갈잎은 지난 밤 내린 비에 씻기어
후미진 골에 켜켜이 재워 진다

한 숨 한 숨 더하여 흐른다는 건
부여잡을 것 없어 두려움에 떠는 것인가


2012-10-10

계획

존재하는

존재하게
존재할 수 있는 범위

어디로부터 존재하게
존재하는 것은 없다

존재하게된 것은
누구도 존재를 계획할 수 없다


2012-05-07

헤아리다

 시간을 헤아린다

기다림도 없는데

소리쳤던 시간도
산너머 기차소리와 함께 멀어지고

바람이 대숲을 흔들어
차라리 아무것 흐름 없는 멈춘 공간도
시간은 헤아림으로 남는다

기차소리 다시금 들리고
여름같은 오월의 햇살은 내일에도 있을꺼라
헤아리지 않아도
천년을 앞서도 뒤서도 시간이였다
다만
내가 저 감나무 여린 잎을
천번을 볼 수 없다는 거
그것이
나로 하여금 헤아리는 자 되게 한다
기다리는 건 없는데두


2012-02-05

봄에 든다

 봄을 기다린다.

겨울이 싫어서가 아니라
견디어야 할 것들에 힘겨움이라
봄은 아니 그러겠지
봄은 내가 누릴 것 하나 쯤은 있겠지
그래서 봄에 든다.

2012-01-21

깊은 겨울

깊은 겨울에 잠긴다.
‘설’은 마음 깊이 익은 날
이젠 누구 없고 바람 또한 옛 같지 않으나
남겨 둔 굴뚝에 연기 피어 올리며 겨울은 더 깊어간다






2012-01-15

겨울 시간

 마른 지프라기 널브러진 골목길

나락 끌티기 보리싹 사이로 흙바람 날리는 들녘
왠종일 돌아쳐 시겟또 송곳이 무디어지고
햇살은 어느 듯 저녁나절
뉘집인들 밥짓는 연기 뒷산 허리에 드리울때
밥먹으라고 정지에서 날 부르는 엄마 목소리

시멘트 길엔 사람 보기 어렵고
허연 비닐하우스 바다 멀리 산은 깎였다.
차타고 나갈일 아니면 마당에 마른잔디 홀로 앉아
해거름 저녁은 오는데
더 이상 밥짓는 연기도
밥먹으라고 두번세번 부르던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것인가


※ 나락 끌티기( 벼 그루터기) / 시겟또( 설매-스케이트가 변형된 말이다) / 정지(부엌)

2011-12-01

십이월을 여는 아침

십이월을 여는 아침
온도 5도 습도 78% 일강수량 20mm
비는 산끝자락에 하이얀 눈발로 묻어나고
젖은 땅거죽의 고요함은 무거워서 따습한 솜이불같아
잠시만 잠시만 저무는 세월은 붙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