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0

풍화(風化)

 얼어

스며들지 못하는 철이 지나다

단단히 부푼 모습
참담히 얼그러 맥없이 훑어내리니
천만년 그제에도 같은 때라

보풀어진 철에
다시 씨앗을 담고 꽃의 바란다


2013-02-19

풍기

기차를 타고 긴 굴 나오니

나의 삼십년 기억 못 할 세월 지나다

돌아보니 에워싼 고갯길 힌눈에 묻었고
트인 들판엔 인연없는 마을 점점이라

나 같이 삼십년 기억이 스쳐가는 이도 있겠지만
낮선 얼굴 다른 모습 어디서 왔다가 또 가는 거겠지
그 이름도 없어 은풍과 기천을 따라 풍기라



2013-02-14

밤바다

 밤바다

초나흘 기우는 달을 등지고
겨울 무직한 바다를 바란다

물빛이 밤빛인지 모를 어둠에
하이얀 물거품 저것도 파도인가

이미 오랜 것인듯 반가움인데
수많은 거듭된 날들에 처음인가

저 어둠에 하이얀 것들처럼
끊이지 않을 물거품인가

열어두는 이와 한계(限界)하는 이
무슨 일 무슨 모습 일까

저 어둠에 쉼없이 밀려와도
넘지 못할 물거품 같아


2013-02-06

그대

 幻想이였다 認定할 수 없는

이로부터 時間은 眞空되어 가다

한결이지 못함이 無常이던가
現實에 닿아도 부질없음인가

그대
그 길에 바랜 푯대라
내게서 나와 내게로 돌아오는 것
내 모르는 바 아닌 것을

비록
헛된 걸음일지라도
그 길에 묻은 흙 내음 풀꽃의 記憶은
나만의 것이며 나만의 人生이라

그래도 幻滅을 認定하지 못하는
眞空같은 時間이 여전히 흐른다.


2013-02-05

감각

 잠들지 않는 시간이 누르고

사람의 기억은 모래 언덕을 넘는데
나의 기억은 어딘지 모른다

코끝에 실바람 닿고
이마엔 여린 햇빛 드리울지라도
내 감각은 무디어지나 보다

어느 때부터 인지 모르니
어느 때까지 일지 알리 없다



2013-02-03

부모

 밭 가운데 바위가 있었다

바위는 밭 갈이 할 적에 늘 비켜 가야만 했다

어느 날
바위는 떠났다
이제 밭 갈이 할 적에 비켜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밭 갈다 힘겨울 때 기대어 쉴만한 곳이 없다
드넓은 밭을 쉼없이 날이 저물도록
밭만 갈고 있다


2013-02-02

겨울이 품은 봄

 안개 묻은 비가 내린다

이월의 첫날
입춘은 삼일 앞
봄은 아니나
겨울이 품은 봄이라

겨우내 응달 눈이 비에 젖는다
허연빛 마른잎 젖어 다시금 짙은 꿈에 드리운다

바라는 건
더디 올 봄에 더디 갈 봄이라
해서
떠나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다

안개 묻어 스치는 북유럽 겨울 같은 바람에
스산한 미련조차
잊어간다


2013-02-01

겨울 산

깔비 끌던 시간

어째 그리도 추웠던지
손등이 다 갈라졌었는데

깔비 내버려 둔 시간
쌀쌀한 추위 그대로지만
깔비 드리운 자리 예 달라

저 숲 땅에 내 발길에 앞서
선조의 숨결이 말없이 잠들고
오늘에 소나무 참나무
다툼인가 어울림인가

시대를 말하는 나
지나서 어느 때까지
어울림도 다툼도 같으랴
선조의 호흡을 천년에 기억할까


깔비 : 소나무 낙엽을 이르는 영남 지역 말, – 경기 지방 말 : 솔가리

2013-01-23

어는 비

어는 비는 내리지 않는다

겨울 응달에 쌓인 눈
얼마간 겨울비에 녹지 않는다

불꽃같은 사람의 뉘에
시간만 급하다

겨울비는 마르지 않는다

밤이 되고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대로 부여 잡을 수 있는 겨울이라면
좋겠지

멈춘 시간 멈춤 고요
눈이 아니더라도 하얀 밤은
다시 휑한 아침에 지워지겠지

가만히 두어도
어는비는 마를꺼라

2013-01-16

트지 않아

 마르다

넉넉한 때와 곳이라도

트지 않는 건 멈춤인가
걸음은 헛되어 제자리

어디로든
봄은 오겠지

내가 트지 못한
몸에
까끄라기 날리다


2012-12-19

2012-11-19

좋은 것

 따스함이 없더라도

춥지 않으면 살만한 것

기쁨이 없더라도
슬프지 않으면 되는 것

즐거움이 없더라도
괴롭지 않으면 좋은 것

여러번 선택된 모습을
좋아한다 한다

좋아한다
좋아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용납하는 것일지니
받아 들이는 것일지니

좋은 것은 없다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내게 있으니
있을 뿐이고

나 거기에
춥지 않고
슬프지 않고
괴롭지 않으매
고마울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