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16

세대(世代)

 몇 천년을 해 왔을

마을 가운데 샘에서 물 길어와
불때어 밥짓고 방 뜨세던 때를
기억한다

밥 다됬다고 말까지 하는 밥솥에
언제든 뜨신 물 내어 놓는 심야보일러
길어도 이삼십년으로 기억한다

마을에 구십은 넘었을 아지매 한분
세상 비어릿다한다

영정은 불때던 시절을 아득히 익지만
삼심년 벌어진 풍속에 낮설은 상주뿐

낮선 상주들 굳이 족보를 더듬으니
250년전 한 할아버지에 이르지만

나 역시 200여년의 시간 기억 못한다
아니, 삼심년 달리하는 풍속에
공유할 수 있는 기억조차 몇 이나 있을까



2013-04-14

1mm

비내림 1mm

구름이 머금은 물 늘 이지만
1미리 내림도 마땅함이 있어야 한다

비 내릴지 아닐지
마음써 보는 이는 안다.

가끔은
봄 햇살에 댓닢이 반들거리는 나절
나는 그 마음 쓰임을 알지 못한다

왜 일까
하는 건 부질없는 바램일 수 있지만
1mm 증발의 아쉬움은
어느 때 일러 알 수 있겠나



2013-04-13

채움

기쁘지는 않아도 슬프지는 않다

즐겁지는 않아도 괴롭지는 않다

아니

무엇 채우지 못한 이 시간
나는 비우지 못한 힘겨움이라

두려워 말라

너도 언제라 하지 않겠지만 죽는다


2013-04-05

2013-04-03

되새김

 지나쳐 온 길

문득 기억에서마저 묻힌 것들
끄집어 보아도
되새김할 수 없는 게 사람 시간이라

한여름 땡볕에 너울대던 활엽수는
바람에 쓸려가는 가을은
마른 잔디위에 가녀린 햇살은
천지에 널브러진 이 봄밤 꽃길과 더불어 다시금 흐르는데
나의 시간은 되새길 수 없음이라

겨우 몇십년을 퇴적한 때가
이리도 아득하니 그리움이라하고
되새려는 것 조차 어려움은
죽음이 갈라놓은 시간안에서
살아있는 시간은
버둥대는 생존 조건이라 치부하고
나는 또 하루를 안위하고 만다



2013-03-30

채워진 시간

 먹음으로 배부름은

채워짐을 알 일이다

더 많이
더 멀리
더 열심히
시간에 달리는 것들
시간에 썩을 뿐이라

달리는 시간

새무리 마냥
집단의 움직임에
자신의 안위를 맡길 수 밖에 없는
불안의 원천이 있기에
시간에 달리고
시간에 새겨짐은 비었다.

호흡함에 안아프다면
견딜만한 여유일지니
여기
이미 채워졌으니
시간에 더는 채우려 말고
오늘을 새기리라


뒤안_살구꽃_2013.03.30

 

2013-03-27

잊은 꽃

골진 하늘에 노란 산수유
비탈진 길 노오란 개나리
격하게 피어나기 몇 번에
흔전만전 모를 또 봄이라
잊은 듯
고개숙여 양달에 핀 할미꽃
너는 내 시절 알꺼나

2013-03-17

타의 시간

최대 50mm예보

봄비 치고는 많은 비다
판넬 지붕 빗소리만 들어도
지붕재 두께를 알 것 같다
얇으면 단열도 문제라
덧대어 해 볼 생각이 든다

해 볼
그 무언가 있음이
사람 삶이런가
자의로부터 때론 타의로부터
아니 어쩌면 타의가 다 아니런가
왜?
교환할 또 그 무언가 자의에 의한
해 볼 것이겠지

휴일이 저물고

타의로 시간이다
나는
교환할 자의 해 볼 것이 무엇인가
오롯이 홀로 흐르는 시간이
진공같이 흐르는데

굵어지는 빗소리 만큼이나
이 밤은 타의 시간을 재촉한다





2013-03-13

흙냄새

 쓰지 않는 힘줄은 시들고

시든 힘줄을 움직이려니
아푸다

기지개를 켠다
내 삶에 쓰지 않은 즐거움은
쓰지않아 아푸다

아닌 즐거움에 그릇됨은
채워진 허물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건
내 이미 길들린 숨결이라

즐거움은 다시 없다
쓰지 않은 힘줄의 아품만 채워지고
거슬을 수 없는 흐름에 나는 내려간다

그래도 그래도
봄날이 다시 와 기지개를 켜며
보풀한 흙내음에 나는 다시 취한다


2013-03-12

 꺽어진 온(百)

누구는 하늘의 뜻을 안다 하는데
쉰이 되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알려는 것이
바라는 것이
그릇된 일일까?

經驗이 묻은 執着이 時間을 支配하고
認識은 錯覺의 울타리에 固着된 것일까

不滿은 그 아닌 것을 念願하고
그 아닌 것에 끝은 虛妄한데
虛妄한 그것에 呼吸은 激하게 振動한다

錯覺일 진정
定向을 虛妄함을 깨닫지 말아야할 것을

이 밤
意味없는 별 볼일 없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存在하는 건 모습일 진저
現狀에 나는 힘겨워한다.


2013-03-10

소개(紹介)

 사는 동안

내 목 위에 내 머리를 이고 살고자 한다.

그러나
유일폭력(唯一暴力)에 굴(屈)하였다.
힌 뼈가 어디에 있을지 모를
선대(先代)의 입 냄새가 느껴진다

그래도
두려운 건
내 힌 뼈가 흙속에 남는 때
살아있는 이들에게 새겨질 모습

내 호흡(呼吸)이 그들에게
그들답게 그들의 머리이기를
나는 나의 호흡을 이어갈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