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는 비문의 내용처럼 1907년 실습선 조난사건을 기념하여 일제 강점기인 1926년 세워졌으며, 1945년 광복 후 마을 주민들에 의해 쓰러뜨려(워낙 규모가 커 부수지 못함) 놓은 것을 1971년에 재건하고 해마다 일본인들이 방문하여 참배 해오고 있으며, 2001년 해안도로 개설로 현재 위치에 조경시설과 함께 세워졌다.
1971년 비의 재건은 당시 일본 동경수산대학에 문구납품업자인 재일교포 한영춘씨가 문구납품 독점 조건으로 이 비를 재건하였고, 당시 포항시문화재보존위원장인 박일천씨가 비석의 재건을 칭송(讚)하는 글은 작은 비석에 적었는데 그 내용이 비굴하기 짝이 없다
※ 작은 비석의 비문을 찬(讚)한 사람은 스스로 부끄러움에 의해서인지 자신의 이름을 파내어 지워져 있다
이 비석은 마을 주민에 의해 철거, 외부 이권으로 재건, 찬(讚)한 사람의 이름이 파내어진 것, 비문 자체에 일본왕의 연호가 메워져 있는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으며, 계속해서 존폐 논란이 있으며, 비석을 세운 일본측(동경수산대동창회 낙수회)에서 매년 마을 주민에게 청소비용으로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고 유지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하고 있는 등, 단순히 과거를 기록한 돌덩이로 보고 지나치기에는 많은 의혹과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2001년 해안도로개설 과정에서 포항시의 알선으로 그 동안 개인 경작지에 세워져 있던 비석를 옮겨 해안절경에 콘크리트 옹벽과 구조물을 갖추어 새로 세웠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일본제국주의 표석을 다시 이 땅에 세워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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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선이냐 실습선이냐?
조난을 당한 배는 쾌응환호로 ‘당시 동경수산전문대학 실습선’이며 ‘조난으로 죽은이가 생도였다’,‘고등어 어업조사 또는 수로탐사를 위한 것이다’는 등으로 당시의 사건을 애써 침략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항변하나,
사건 당시 1907년은 이미 우리의 주권을 유린(을사늑약)한 일본은
우리 강토를 마음대로 드나들고, 우리의 바다는 이미 저들에게 빼앗기고,
저들이 이 땅에 행한 모든 행위는 침탈과 지배의 과정에 지나지 않으므로
실습선이 곧 침략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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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정의(定義)는 미래의 문제
– 역사적 사실 논쟁은 역사왜곡의 단초를
제공한다 –
역사적 사실에 논란이
있다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에 삶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라.
독도문제, 임나일본설 …왜 문제가 되고 논란 꺼리가
되어야 하나!
마찬가지로,
동해절경 호미곶에 세워둔 이 돌기둥의 정의(定義)가
훗날 저들이 정복지에 대한 표석이며,
저들의 표현대로 한반도에 진출한 점령비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랴!!!
역사사실의 논란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 가치혼돈을 안겨 줄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나아가 저들의 과거
침략행위에 당위성을 찾을 자료가 될 것이며
미래에 되풀이 할 침략 근거의 빌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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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납할
수 없는 기념
죽은 자에 대한 위로를 위한 단순한 비석이라면
허용 못할 이유가 없다.
죽은 자를 위로하는 어느 비석이 높이 3미터
사각의 육중한 돌기둥으로 세워 마치 이 땅을 지배한 영원한 표석처럼 둔단 말인가?
이 비석은 위령비가 아니다.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이러한 비석을 그대로 두는 것은 우리의 치욕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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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광복이 되지 못했다면, 이 비석은 100주년을 맞는 올해에 일본인들이 한반도 진출에 공헌을
한 사건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비석을 둘러싼 지역을 영광스런 행위로 성역화 하여 기념하였을 것이다._100년 전 저들의 영광은 우리의 치욕이다
저들은 동경수산대학 기록에서도 표현한 바와
같이 오늘에 이국(異國)이 된 한반도에 있는 기념비를 아쉬워하듯, 다시 이 나라 강토에 대한 침략 기회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역사란 정리하는 자의 소유물이다.
이 비석을 미래에도 그대로 둔다는 것은, 과거
100년전의 침략과정에서 일어난 숱한 행위를 개별적인 일로 구분하여 기념할 일이라고 인정하는 일이다.
이는 우리의 후손에게 매우 심각한 가치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
겁탈한 자의 행위가 사랑이라고 해석되는 건,
겁탈당한 자가 자발적이라고 말하고, 그걸 사회통념으로 만들면 우리는 또 다시 치욕의 세월에 내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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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쾌응환호조난기념비는 마땅히 철거되어야한다.
민족문제연구소대구지부는 조난 사건 100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 역사를 바로잡아 우리의 후손에게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와 가치혼란을 물리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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