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1

채우

간 밤에 내린 가을비였는데

아침엔 겨울비 젖은 듯하다

아직 찌부등한 몸을
추스려 홀로 선 마당에
비에 젖어 늘어진 마음되고
꿈결은 젖은 풀잎처럼 짙게 우려나온다.

꿈은 계획하지 않아도 채워지는데
나는 또 하루를 무엇으로 채울까


2014-10-23

새벽

새벽 한시반 불끄니 안밖이 어둠이다

바닷가길엔 차 소리 끊어진지 오래고
솔숲 건너 파도소리 무겁게 밀려오니
비린내 스며든 내 넋은 잠을 잃었다.

파도란 바다에 자유로운 모습이데 
파도란 육지를 탐하여 치지 않는다 
파도란 바닷물이 바람에 흔들림이라

자유란 나로부터 이어가고 싶음이며
자유란 나로부터 매여지고 싶음이라
자유란 이 아닌 것에 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바닷물처럼 바람에 흔들리어 
이 밤 잠을 놓치고 우는 파도되니

정녕
바람된 이로부터 
이어지고 매여지고 싶음이라


2014-10-18

가을 빛

가을 빛은 
끝 모를 고요함으로
뜨락을 가득 메우고
홀로 앉은
사람에 마음 자리는
떨쳐 낸 나뭇잎 같아


2014-09-25

부합

나는 사람 하나
더한 것도 없고
덜한 것도 없는
때론 지독한 존재감으로
때론 꺼질듯 초라함으로
그래
초라함도 존재감도
전제는 관계
나는 무엇과 관계인가
결국
내 이기에 관계라
내 이기가 
관계에 이익으로 부합함이라



2014-09-20

가을

가을은 노오란 우체통을 품고
빈 우체통만큼 적막한 뜨락에
설익은 단감은 마음만 바쁘다.

2014-09-01

기억

내 눈물을 말려서 시간을 팔아오리

하늘은 저 만치 흐려 흘러 가고
마을엔 아이 울음 소리 끊어지다

내 시간을 말려서 기억을 팔아오리
구름은 헬수 없는 무게로 실리고
들리지 않는 소리 언제 다시 들을까


2014-08-01

아무데도

아무데도 아픈데는 없다

그렇다고 팔팔하진 않다

아무것도 두려움이 없다.
그렇다고 강한건 아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그렇다고 넉넉하지 않다

아무것도 아쉬움은 없다
그렇다고 마냥좋지 않다


2014-07-16

먼발치

 말을 건넬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지만
내 눈길에 가득차고
세상은 뒷그림 되었다

아흔아홉 가지는 없어도
먼발치 바라볼 수 있는
한 가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2014-07-10

여름밤

마른 저녁이 내린다.
한웅큼 짤아 낼 듯하던 바람이
그대로 주저 앉은 여름 밤이다.


누른국시

 뜨겁던 햇볕 서쪽 산마루 넘어 저물어 가도

한낮에 더위와 아직 어둡잖은 여름 날 저녁

마당 가운데에 생풀 얹어 피우는 모깃불이라
모기가 달아 나는지 모여 드는지 알 수 없어

논에서 돌아 온 아버진 뜨락에 장화 벗어두고
어머닌 마루에서 누른국시 홍두께로 밀어썰고
집안엔 누른국시 삶는 냄새 그지 없이 좋았다

몇 십년이 지나
모깃불도 홍두께도 누른국시 찾을 데 없어지고

누른국시 짜투리 한 줌 떼어 불섶에 구어먹던
그 맛이 피자 맛이더라.


2014-07-02

편하기에

 사랑하지 않는 것 보다

사랑하는 것이 편하다

사랑은
살아있는 이 만이 할 수 있으며
자유로움에 비롯하기에
사랑하는 것은 편한 것이라


2014-05-31

아침

빛은 물위에 흐르고
어지러운 자국만 남긴 물가엔
소리없는 아침이 흐른다.

2014-05-26

시간이 아프다

토할듯이 내지른 빛깔이라

열흘이면 지고 말것을
한 해를 견디어 질러내다

시간이 아프다

남김은 없지만 다할 수는 없다.
하루 나절로 닫힌 시간일지언정
내 한 뉘를 쏟아 낼 지어다


2014-04-12

봄에 밤

봄에 밤
달은 비 올것 같은 하늘에 숨어 들고
바람결에 라일락 내음 스치니
그리는포근한 봄에 밤이라

2014-04-02

벗꽃

찾는 이 없고 
부르는 이 없는
천지에 벗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내 눈에 너절한 종이 가루 같다

2014-03-29

봄비

비가 내린다.
봄비라 한다.
비젖은 참꽃
사람 맘 같이
짙어져 있다.

2014-03-28

아침 시간

 씻기도 귀찮을 정도로 고요한 아침

그래, 
아무것도 하지않음이 
결국은 내가 가지는 시간이라

나 시간에 머물지만
시간은 내게 머물지 않아
또 하루를 비우든 채우든 가고 말겠지

그렇게 가고마는 시간에
인연은 흔적마저 희미해져
지난 가을 시들은 풀잎이 새봄 새싹에
사그러져가듯 사라지겠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강물이 흐르면 흐르는대로
욕심도 그리움도 던져두고
내 채워도 비워도 가고마는
하루를 버티어 가겠지



봄-

어이하나
봄은 이만치 왔는데

어이하나
꽃은 저만치 피었는데


2014-02-23

봄이 온다

봄이 온다

봄이 오면 겨우내 잠들었던
나를 찾아 헤매인다

봄날에 
헤매이다 문득
망울져 기다리는 꽃잎에 만나다

2014-02-22

오늘

 어제 죽은 이가 그렇게도 바라던 오늘이라지만
죽은 이가 하루 더 살아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2014-02-21

파도

 파도란 바닷물이 타의에 의한 흔들림이다.


항구

 우수 지난 이월

갯가에 새벽 바람이 차다

바람에 뭍은 비린내가
술 취한 아침을 깨우니
천만번 오고가는 항구에 꿈처럼
언제라도 감싸이고픈 약속이라


2014-02-19

우수(雨水)

맨발에 닿는 마른 잔디

겨우내 서릿발로 꼿꼿하더니
우수(雨水) 지난 비에 눅눅하다

사각거리는 대숲엔 
늦겨울 시린 바람 밀려나고
귓볼 간지런 바람 찾아든다

그토록 찢어지게 너덜한 겨울은 가고
봄 날에는 분홍 빛 만으로도
넉넉한 그리움으로 채워 지겠지요


2014-02-18

바람 조각

 한 조각 바람이 씻겨간

골 깊은 고요는 태고인듯 한데
알피엠 이천사백 엔진소리로 흐른다

한 나절 때가
녹아내리는 봄눈 보다 짤디 짧지만
마른 저수지에 한 웅큼 길러 넣듯
겨를을 채우나니

좀 더 시절을 더한다면
참 편한 삶이라 여길만한데
차창에 흐르는 봄비 젖어들듯
씻겨가는 바람에 기다림만 남는다.


2014-02-10

입춘-2월

입춘에 드는 촌에 눈비 내린다

흐린 하늘 까닭 없이 애달프다

매화 봉오리 눈비에 젖었건만
피어나지 못한 꽃처럼 시드니

이월 젖은 하늘은 흐리고 흐려
홀로 드는 봄이 한 없이 아퍼라



2014-01-24

샛별

새벽 새녘에 남은 별 하나

엊 저녁 처음 보았던 너라

날 새고 뭇별들이 밀려나고
햇빛에 너도 볼 수 없었구나

하지만 잊은 듯 하루가 저물면
내 뜰에 다시 별이 되어 이르겠지

정작 밤에 지고 낮에 뜨는 별이라
빛과 함께하지만 그 빛에 볼 수없구나


2014-01-23

달빛 바다

 바다에 달빛조차 숨죽여 젖어든다

그리고 잔잔히 너울되어 밀려와서
차라리 눈감으면 파도소리 이른다

달빛이 아니어도 그 모습 그리워
여전히 발길은 파도되어 찾아드니
어두운 바다는 아늑한 소리 이르고

밀려드는 파도는 하얀 달빛을 실어
향기로운 입김에 젖어드는 그림은
천년으로 갚아도 교환할 수 없어라


2014-01-18

화본역(花本驛)

꽃들이 흩어지고 눈발이 흩날리 제

화본리 찾아드니 님 자취 예스러워

님이여 이제 만나 남은 길 함께가자
오는 길 돌고 돌아 어이할 수 없어
휑한 대합실 한 켠 이제사 마주하니

짤려간 시간에 미련  버리고
남겨진 시간엔 함께 기다리자
아직 마지막 기차가 남았으니



2014-01-12

새벽

새벽을 걷어 올려

맨발로 딛는 마른잔디
성그런 서리발이 좋다

애달픔도 서러움도
긴 밤에 얼어 죽었을
차가운 겨울 새벽이라

푸설한 일들에 그래도
또 하루란 매듭을 달고
밀려오니 새벽을 걷는다





마지막

어느 때가 마지막 일지
오늘 인지 알수 없는거라
조건은 약속되지 않아

오늘이 여러 날에 하루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기억 되는 날처럼
시간 탑을 살라 올린다

이해

미안하다.

누구라도 듣기 싫은 말이라

미안하다
내가 거부될 때 쓰는 말이라


2014-01-06

문득

 문득 우린 만났지요

나뭇잎 물드는 그때
그뿐 함께는 없지요

다시 문득 만났지요
차 한 잔에 여유처럼
너울지는 바다 같이

만나야 할 까닭없어
우린 찾지 않았었죠
우린 문득 만나니까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것
문득 주어진 인생사 듯
우린 끊어질 수 없겠죠
우리가 살아 가는 시간
문득 만날 날은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