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핀다고 한다
뒷뜰 산수유 벌 비행 소리 잦아들고
동네 어귀 개살구꽃 화사하다
양지 바른 마당에 뾰족한 새싹 잔디
햇살 아래 말이 없다
어느 집 담장 높이 하얀 목련
꽃상여 날리듯 하늘을 향하고
저 멀리 안산 마루 아직 잔디는 누른데
말 없는 봄 햇살에 더한 가슴 미어진다
꽃이 핀다고 한다
뒷뜰 산수유 벌 비행 소리 잦아들고
동네 어귀 개살구꽃 화사하다
양지 바른 마당에 뾰족한 새싹 잔디
햇살 아래 말이 없다
어느 집 담장 높이 하얀 목련
꽃상여 날리듯 하늘을 향하고
저 멀리 안산 마루 아직 잔디는 누른데
말 없는 봄 햇살에 더한 가슴 미어진다
권덕규(權悳奎:1890∼1950)는 그의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1923)에서 “훈민정음은 그 이전 조선 문자의 부흥(復興)”이라 하며 ① 삼황내문(三皇內文), ② 신지비사문(神誌秘詞文), ③ 법수교비문(法首橋碑文), ④ 왕문문자(王文文字), ⑤ 수궁문자(手宮文字), ⑥
남해도 지면암 석각문(南海島地面巖石刻文), ⑦ 각목자(刻木字), ⑧ 고구려문자(高句麗文字), ⑨ 백제문자(百濟文字), ⑩ 발해문자(渤海文字), ⑪ 고려문자(高麗文字) 등 11가지를 내세우고 이를 다시 남북 양파로 분류하여 ① 북파(北派):단조(檀祖)→부여(夫餘)→고구려→백제 또는 발해, ② 남파(南派):신라→고려로 구분하였다. |
□ 남해 상주리 석각(도지정문화재) – 지정번호 : 기념물 제 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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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읍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상주로 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두모마을 표지석과 함께 두모포로 가는 길이 나온다. 두모마을 표지석에서 상주쪽으로 5백여m 가면 길 왼쪽에 금산 부소암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2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상주리 석각’이라 부르는 글이 새겨진 거북바위에 닿는다. 천하를 통일한 중국 진시황이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시종 서불을 불렀다. “서불아 너에게 동남동녀 500명을 줄 터이니 불로초를 구해 오라” 서불은 산 넘고 물 건너 남해 금산까지 찾아왔지만 불로초는 구하지 못했다. 늙지 않게 해 주는 풀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한동안 사냥만 즐기다가 금산을 떠나면서 바위 위에 글을 새기고 갔다. 이런 이야기를 간직한 바위가 남해에 있다. 이 문자는 고대 역사를 밝히는데 귀중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유적이다. 바위가 거북 모양을 하고 있어 ‘거북바위’라고 부른다. 이곳 암각화는 관심있는 학자들의 현장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서불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왔다가 사냥을 즐기다가 갔다”라고 쓴 글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들도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문자라고 하는 사람, 고대 거란족의 문자라고 하는 사람, 훈민정음 이전의 한국 고대문자라는 사람, 산스크리트 계통의 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 ‘귀인의 사냥터’라는 그림 표지라고 주장하는 사람 등등 아주 많은 학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정답은 ‘알 수 없다’가 정확하다. 서불 일행은 불로초를 구하려 온 것이 아니라 망명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진나라의 혹정을 피해 망명한 자들이 한반도에 건너와 일부는 일본으로, 일부는 남해안에 그대로 정착했을 가능성도 있고, 그 중 일부가 서불 일행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산을 비롯해 경남·제주 일원에는 신선사상이나 서불과 관련된 전설이 숱하다. 이처럼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거북바위 옆에는 거대한 바위벼랑이 있다. 그위로 올라가면 두모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편 두모마을 표지석 바로 앞집의 고구마 밭이랑에는 비늘 달린 짐승의 몸통 같이 희귀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이 비늘무늬 바위는 거북바위, 동이바위와 더불어 상주리 일대 바위 문화의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