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닫히고
어스럼 밤 달빛에
피어난 하이얀 꽃 다시 머문다
닿으면 추려들까 머뭇하고
아니 닿으면 잊을까
살펴도 달빛이 빚은 하이얀뿐
머뭇거리지 않는다 해도
품을자리 이미 메워졌고
날이 밝으면 닿음도 헛일이라
때가 더 흐르면
이 마저 지고 없을 것을
내 손끝은 조금씩 하이얀 밤을 묻히고 있다
낮은 닫히고
어스럼 밤 달빛에
피어난 하이얀 꽃 다시 머문다
닿으면 추려들까 머뭇하고
아니 닿으면 잊을까
살펴도 달빛이 빚은 하이얀뿐
머뭇거리지 않는다 해도
품을자리 이미 메워졌고
날이 밝으면 닿음도 헛일이라
때가 더 흐르면
이 마저 지고 없을 것을
내 손끝은 조금씩 하이얀 밤을 묻히고 있다
영하 5도 날씨 바람마저 불어 겨울이다 백엽상 아래 지중온도계 끄집어 내어 보았다 무덤속 1M이하 단절되지 않았던 시간 춥지 아니한가 |
후회합니다
그저 그것이 님의 마음이라 여기고
돌아선 시간을 이제에 후회합니다
후회합니다
이것이 최선이라하고
스스로 안위한 게으름을 후회합니다
후회합니다
소통의 단절은 돌이킬 수 없는 아품인줄
미처 몰랐다함은 내 핑계일 것입니다
후회합니다
후회하는 이 시간도 인생의 한 조각인데
업겁의 세월에 순간의 살이 살뜰하지 못함을 후회합니다
우리는 만났습니다 함께 할 것입니다 열번이면 어쩌라 하지만 홍수는 흔적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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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뿐이였습니다
밤새 새하얀 서리가 내려 않은 마른잔디 위에
늦은 졸음 날리며 겨드랑에 스미는 차가움은
차라리 맞이하고 싶은 삶이였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뒷곁 대밭이 부비대는 이야기는 천년을 이어들어
달빛 가린 밤을 애써 지어 갈무리하면
바람이 잠든 아침을 거짓하고 싶었습니다
바라보는 눈이 그려집니다
성애 낀 유리창의 답답함을 지울 수 없는 처지가
나를 패고 싶음에도 따스함이 묻은 숨결이 어깨를 넘고
다가서는 건… 더 느끼고 싶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어느 정점에선가 살아있다는 이야기이다
다만 나는 그 정점으로부타 멀어져 있을뿐
어제도 있었고 내일에도 있을 별과 공간이지만
어제의 자리 내일의 자리 같을 수 없고
어제의 자리 억지 오늘로 돌아가서 부여 잡은 들
내일로 가는 오늘에 함께할 수 없으니
어제의 정점은 오늘과 함께할 수 없음이라
그리고
우리들의 정점은 다 같을 수 없지만
우리가 만나는 이 시간
우리의 정점은 하나이다
흐른다
어디에서 어디로인 것조차 흐른다
아니 흐를 것 없으니
어제의 것이 오늘에 여전함은 거짓일 것이라
다만 거짓 아닌 것은 흐르는 그 자체일 뿐
사람의 살이에 스므남짓 해를 흘러
부딛힘을 부여잡는 마음은 거짓일까
아니 이 부여잡음도 흐름에 있으니
흐르지 않는 곳에 거짓일 꺼라
사람아 나 너를 품고자 한다
멈출 수 없는 품일지언지정
내 너를 품을 것은
내 살이에 으뜸으로 착(善)함이라
존재하는 것을 사랑하라
호흡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라
사랑하는 너 또한 호흡하고 존재하는 것
시간이 지나고
남은 것은 존재했던 기억뿐
그 기억에 아름다운 것은 사랑했던 것 뿐
너 또한 아름다운 기억되어 남겨질뿐
이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태어남도 죽음도 제 것이 아닌 줄 알고
제 것이라 생각하는 것 조차늘 죽음을 생각한다
단 한 번으로 모든 오고감이 끊어진 이제
그 너머는 짐작과 믿음일 뿐 겪음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아닌
살아있는 것이라는 그림을 되 새긴다
바램과 아품은 살아 있음이기 위한 그림인가
바램을 채우고 아품을 줄이면 삶은 이루는 것인가
아니 채워지지 않음과 견디는 아품 이대로가 삶이런가
엄마에 걱정이 그렇게 끊어질 줄 몰랐던 건
시간을 내 가진 것이라 생각한 나의 건방짐이였으며
쥐어짜는 아품에도 느낄 수 있어 기댈 수 있는 열흘에
아버지 마저 그 아품 훌훌 저버리고 가시는 시간
누가 정한 때 이고, 누가 알았던 것이랴
나 인생의 절반을 지나는 시간
시간을 말하기엔 내가 정할 권리 없기에
시간 위에 드리운 삶에 내 것은 없다
“할머니는 왜 아직 안와?”
네살박이 조카가 추석 전날 저녁에 하던 말이다
이제 할머니 집도 알고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귀엽게 자랐고
연 이은 장례를 했지만 아직 죽음이 무언지 모를 일이다
그 녀석 돌봐준다고 두 분이서 저작년 대전 올라가서 일년을 머물다
할아버지 몸이 편찮아 어쩔수 없이 내려오게되어
할아버지가 못내 아쉬워했던 손녀인데
그토록 귀여운 손녀가 왔는데 어딜 갔기에 돌아오지 못하는가
손녀는 언제나처럼 다른 식구 다 있는데
할머니는 장에 갔다 늦게 오는 줄 알고
“할머니는 왜 아직 안와”하고 묻는다
어찌 저런 손녀를 두고
두분이서 이렇게 황망히 갈 수 있나
왜 아직 안와?…..
나 역시 네살박이 조카의 말처럼
금방이도 오실 것 같은데…
눈물이 흐른다
바위에 짓눌린 땅에서 스며나오는 지하수처럼
아직도 감당되지 않는 일에 눈물이 난다
일기예보 일교차 온도에 더 민감하였다
일교차가 심하다는 날 출근길 지금도 전화해야할 것 같은데
일요일 아침이면 나 게으른 신앙생활 일깨우려
어김없이 걸려오던 전화 지금도 올 것 같은데
이른 퇴근길이면 들리어 자리 살펴 드려야 할 것 같은 생각 여전한데
토요일 일요일 오후나절 아이들 데리고 머무는 자리
마당에 서성이면 방에 계실 것만 같은데
오지않는 전화 받지 않는 전화
살필자리 없는 시간
비어있는 방
끊김의 아품이 이러한가
줄기에서 짤리운 가지처럼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끊어진 현실이
나는 못내 인정하기 힘들다
8월 24일 어머니의 갑작스런 돌아가심의 충격도 가시기 전에
우선 대소변을 받아야 하는 아버지를 요양병동에 모셔두고
장례를 치르고, 극도로 불안정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자
한의원에 침술로 다소간의 기운을 차릴려고 하는 때
다시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9월 5일 퇴근후, 요양병동에 도착하여 침상의 아버지를 보니
열린 입안에 하얗게 혀가 말려있고 반쯤 뜬 눈이라
얼른 가슴에 손을 넣으니 아직 약간의 따뜻함이 남아 있는 걸 보아
내가 도착하기 직전 그렇게 말없이 가시었나 보다
저녁 식사 시간에만 하더라도 간병인 한테 떠 먹여 달라고 소리 질렀다는 분이
가실 때 간병인 조차 모르게 그렇게 가볍게 가시었나 보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젊어서는 늘 자주 편찮아 했고 마지막 2년동안 죽을 듯이 아파하며
‘나 이번 주 못 넘긴다’하시던 말씀이 한 두번이 아닌터라
차라리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 되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앞선다
어머님에 이어 더 이상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음에
침상에 누윈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삼십여분 기도와 회한에 잠기는 동안
아버지의 몸은 점점 싸늘히 식어갔다
생에 손과 발 귀와 입이 되어 주시던 어머님이 열이틀전에 황망히 가시고
어찌 영문도 모를 요양병동에 모셔두니 어머니가 ‘사고 났나?’하고
내게 눈치로 물으시길레 사실대로 먼저 가심을 알리니
아버지의 마음 또한 어머니에게로 달려가셨나 보다
아버지 당신보다 더 위험한 어머니 병환인데
당신 아푼 하소연에 어머니 염려는 두번째 되어
소홀한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죄책이 되고 말았다
아들이 아무리 잘한다해도 어디 아내의 손길만 하랴
어머니 손길 끊인지 열이틀 같은 시간에 아버지 당신마저 가시고 말았구나
아직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그보다 무엇을 어덯게 해야 할지 막막함이 먼저이고
슬픔은 나중일 것 같다
나 불효함의 후회스러움은 오랜시간 두고
내 슬픔이 될 것 같다
어머니 생전에 성경 암송 과제– 큰글씨로 출력해서 갖다드릴려고 한 전날 저녁에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셔서 결국 무덤속에 넣어 드린 글이 되었다 |
성경암송(2007년도후반기)장년부<히브리서11:1~14>
1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2 |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3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 |
4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
5 |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
6 |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
7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
8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
9 |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
10 |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
11 |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줄 앎이라 |
12 |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
13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
14 |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
내 육신의 한쪽이 한순간에 짤려나가는 아품이 이러할까
창백한 엄마 볼에 내 얼굴을 부벼도 아무 말씀없이 그저 편안히 잠든 모습일뿐햇볕 넘치는 날이다
햇볕에 허덕이는 잎들의 갈증에저가 변했다 하다
세상이 저를 가만두지 않아
이 비는 비문의 내용처럼 1907년 실습선 조난사건을 기념하여 일제 강점기인 1926년 세워졌으며, 1945년 광복 후 마을 주민들에 의해 쓰러뜨려(워낙 규모가 커 부수지 못함) 놓은 것을 1971년에 재건하고 해마다 일본인들이 방문하여 참배 해오고 있으며, 2001년 해안도로 개설로 현재 위치에 조경시설과 함께 세워졌다. 1971년 비의 재건은 당시 일본 동경수산대학에 문구납품업자인 재일교포 한영춘씨가 문구납품 독점 조건으로 이 비를 재건하였고, 당시 포항시문화재보존위원장인 박일천씨가 비석의 재건을 칭송(讚)하는 글은 작은 비석에 적었는데 그 내용이 비굴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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