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라
너 삶이 그러하듯
그 삶 또한 껍질에 붙들 수는 없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
어리석은 욕심일 뿐
무엇이든 이미 되어 있지 않나
시간은 구월을 한참 넘어가고
아침 나절 햇살 고운 운동장엔
아이들 그림자 한치 더 늘어지니
가을을 이야기합니다
시시때때 걱정끼치던 빗줄기도
호흡의 한계를 시험하던 더위도
이젠 지난 여름이라는 과거로 돌려놓고
스믈스믈 스며드는 가을인데
기다려 채워져 있어야할 것들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니
막상 텅빈 하늘처럼 비워지고
이 가을냄새에 묻어있을 그리움을 띄워 봅니다.
기울어진 햇살에 긴 그림자
멍든 잎 애처론 빛깔의 가을이라
가을은 불현듯 오지 않았다
누군가 오랜 기다림으로 열어둔 곳에
찬 이슬에도 더욱 짙은 국화처럼
여름내 쑥대같은 국화가
저토록 노오란 빛일줄이야
국화의 필연이였다
내 무딘 시선에도 꺼리낌없이
홀로 향기 품은 국화
이제에 나 너에게 취한다
더운 기억 지워 없듯
빈하늘 뿌옇게 흩어지는 시간
맹세를 하지 말라 했다
어찌 스스로 만들어 가진 시간 아닌데
마치 제 것인 양 시간을 팔아 맹세하겠는가
지친 더위 아무것도 없듯
허한 공백으로 꾹꾹 눌러 채운 때에
이제는 만나야 한다고 함도 헛된 맹세인가
다시 흩어지고
맹세보다 그냥 이라는 말로
여름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