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5

알람(alarm)

다섯시 삼십분

전화기 소리가 요란하다.
잠결에 이 시간 웬 전화?
-알람이다.
양력 구월오일 음력 칠월이십사일
어머니 가시고 열이틀
이제 만 육년이 지나는
아버지의 가신 날이다
가시는 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채 식지 않은 체온이
삼십여분만에 싸늘히 식어가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세월이 또 이만치 흘러가고 있구나

부모란
전쟁터에서 후방기지와 같은 것
언제나 나를 지원하고
마지막 보루로 나를 지켜주고
기댈 언덕인데
후방기지를 잃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
이제 내가 자식들에게
후방기지가 되어야 할 시간
세월은 또 그렇게 가나보다


살아 남은 자

 내것이 아닌 것으로 나를 증명하여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

제 목 위에 얹힌 입은 침묵하고
남 모가지에 얹힌 말로 해야만
제 머리가 붙어 있는 시대

제국의 마지막 몸부림은
끝내 쓰러지고

옆집 아저씨 손잡아 일어 선다지만
사람 모가지 위엔 제국은 간데 없고
민국은 아득하다.
옆집 아저씨와 앞집 도둑은 이웃일 뿐
여전히 살아남는 문제는

무엇을 침묵하여야 하는지
무엇을 증명하여야 하는지
살아 남은 자는 알고있다.


2013-08-30

적막(寂寞)

 고요한 곳에 쓸쓸한 때이라

적막(寂寞) 그것은
그렇지 않음에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

마주 따스함이 남겨지고
마음 길은 영원에 닿았어라

거기까지

단편(短篇)의 때는 아쉬움이고
동댕이쳐진 곳때(時空)

습(濕)한 비가 내린다
팔월의 짜투리 젖은 내음이
호흡을 옥죄이다

외로움 그것은
그 아님이 있기 때문이라


2013-08-27

가을 냄새

아직 여름 냄새가 덜 빠진 가을이

문지방을 스믈스믈 기어 들어온다

애써 참고 견디는 여름이라하지만
가을에는 무엇으로 약속할 수 있나


2013-08-10

덧칠(塗抹)

 눈이 어두어

시간에 덧칠하다
덧칠이 낡음도 시간이라
낡음에 빛깔이련가

아차!
덧칠은 벗어날 수 없는 섞임
섞임에 벗지 못할 일이라

되물릴 수 없는 빛깔은
소멸할지라도 어이할 수 없음에
나는 통곡한다


2013-08-08

더위_2

더위는 온 몸을 감싼다

조절할 그 무엇 있으랴

한생각 온 시간 메운다
조절할 그 까닭 있으랴


2013-08-06

상사화(想思花)

돌아 본다

평지에 돌출한 꽃무릇
이름하여 상사화라

햇살 좋은 이른 봄
짙푸른 잎 키워내고
여름 오니 시들어 흔적 없더니
늦은 여름 화려한 분홍 웬일인가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해도
한뿌리 한 몸이라


2013-08-01

푸르는

푸른 여름은 들녘에 스치고
뜨거운 시간은 설레임이라
한계는 하염없는 시간되다

2013-07-29

개새끼

찾아오는 건
이웃 집 개새끼
잔디에 똥 내지르고 달아난다
패죽일 방법 없을까


2013-07-28

여름 밤

 수풀의 시끄러운 소리

그냥 벌레소리라 하고
아무도 어느 벌레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느 벌레의 명멸해가는
아우성일지도 모를 여름 밤
아무도 기억하는 이 없이
어둔 수풀에 잠기고

선풍기 모터소리
시끄러움이라 말하지 않는다


2013-07-12

슬프고 싶다

 여름은 맺음이라

피고 진 꽃 어디
슬픈 일이다

여름도 저버린 때
꽃 찾아 보았으니
슬프고 싶다


계획

 또 다시 시간을 노래한다

계획하여 온 것이 아니듯
계획하여 갈 일도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계획하였고
계획할거란 걸 우리는 안다
그리고 그걸 믿음이라 한다

다만 착각하는 건
내일에 오늘을 두는 일이라

제 계획이 아닌 내일에 오늘을
미루는 건 권한 밖에 일이라
시간에 욕심을 두는 것과 같으니

오늘에 아낌없는 시간으로
나는 이미 이루어지는 것
그 밖엔 계획한 이의 몫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