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18

백두산 정계비 설치

 청 황실은 선조의 발상지로 영산으로 여기는 백두산을 청의 영역 아래 두고자

서기 1677년 청(淸)조 강휘제 16년 내대신 우무누[武默訥(무묵눌]로 하여금 백두산을 답사하도록 함.
서기 1684년 청은 변장,러추(勒楚)로 하여금 압록강 상류를 통한 백두산 답사를 하도록했으나
답사도중 조선인에게 함부로 총질하다가 도리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어 답사가 실패로 돌아감.

목등[穆克登(목극등)]의 백두산 탐사
서기 1712년 2월 우라총관(오랍총관) 묵등(穆克登) 일행 백두산 탐사에 조선이 동반협력해 줄것을 요구하여, 조선 의정부우참찬 ‘박권’을 접반사로 하고 함경도 관찰사 ‘이선부’가 압록강 상류에 있는 후주(厚州)에서 이선부 일행과 만나고, 5월4일 혜산진에 도착하여 조선 접반사 박권 일행과 만나서 백두산으로 출발하여 5월 11일 백두산 천지에 도착하였다.

정계비 건립
묵등 일행은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오면서 조선과 청의 국경으로 인정되는 분수령에다가 주변을 더 살펴보고 경계비를 세우기기로 하여 1712년 5월 15일 정계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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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청
오라총관목등극봉
지사변지차심시서위압록동
위토문고어분수령상늑
석위기
강.희오십일년오월십오일
필첩식소이창통관이가
조선군관이의복조대상
차사관허량박도상
통관김응헌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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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총관 목극등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변방의 경계를 직접 조사하고자 이곳에 이르러 살펴보니 서쪽은 압록이고 동쪽은 토문이다. 그러므로 물이 나뉘는 고개 위에 돌로 새겨 기록하노라 …..강희 51년 5월 15일
필첩식(글쓴이) 소이창, 통관 이가, 조선군관 이의복 조대상, 차사관 허량. 박도상, 통관 김응헌. 김경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