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04

‘조·중 경계〓토문강’ 확인(조선일보)

 


고구려재단, 백두산 정계비터 찾아내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1712년(숙종 38년) 조선과 청이 국경 확정을 위해 세운 백두산 정계비의 위치를 한국 학자들이 확인했다. 현장 확인 결과, 정계비에서 두 나라의 경계라고 밝힌 ‘토문강(土門江)’은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松花江) 지류임이 분명해졌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金貞培)은 3일 지난달 19일부터 30일까지 북한 학자들과 북한 내 고구려 유적을 공동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백두산 등반길에서 정계비가 있었던 곳을 확인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정계비 터가 있던 곳은 백두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주차장의 군 초소 뒤편이었다. 이곳에는 원래 정계비를 세워놓았던 받침돌과 북한이 1980년 그 옆에 세운 글자 없는 흰 비석(높이 45㎝)이 있었다. 김정배 이사장은 “주차장 근처에 정계비 터가 있다는 증언과 주변 지형, 중국어판 북한 지도에 천지에서 동남쪽 4㎞ ‘백두산 사적비’로 표기된 지점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조사에 참여했던 고구려연구재단 배성준 연구위원은 “정계비 터에서 동쪽으로 바라봤을 때 송화강의 지류인 마른 물줄기가 보였고, 두만강 상류인 홍토수(紅土水)와 석을수(石乙水)는 전방의 대각봉(大角峰) 너머에 있었다”고 말했다. 백두산 정계비는 “서쪽으로 압록, 동쪽으로 토문(土門)으로 경계를 삼아 그 분수령에서 돌에 기록한다”고 쓰여 있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 때 없어졌다. 중국은 토문강이 두만강의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두산 정계비가 있던 자리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광경.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흐르는 토문강(송화강 지류·점선)의 마른 물줄기만 보일 뿐 두만강 상류는 대각봉(가운데 산봉우리)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계비는 압록강과 토문가의 분수령에 세워진 것이다. 작은 사진은 북한이 정계비터에 새로 세워놓은 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