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12

핫바지와 엽전

 현대과학을 유럽의 사유 방법으로 설명하면 우주의 처음 기원이 빅뱅이고 빅뱅의 대폭팔로 무한히 팽창하여 가는 것이 우주공간이라고 설명을 한다. 이 이론의 보완적인 설명으로 수축하는 공간의 블랙홀의 설명도 결들이고 있지만, 이러한 유럽의 우주관은 근본적으로 시작과 끝을 단위로 놓고 생각하는 방법에는 예나지금이나 큰 차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은 사물을 생성할 때도 순서 있게 처음부분과 끝부분으로 나뉘어 상당히 합리성 있게 보이는 듯하다. 그래서 앞과 뒤 과 같을 수 없으며, 위와 아래가 같을 수 없으며, 왼쪽과 오른쪽이 같을 수 없다
그러나 “한”의 모습을 말할 때 그러한 처음과 끝의 일목요연한 순서는 무의미하다.
처음과 끝이 없다.
임의의 처음과 끝은 있을지 몰라도 원래부터의 처음과 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예를 들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고 말할 때, 움직이는 것은 정지한 것에 대한 상대적인 서술인 바, 태양을 정지한 상태로 파악한 상황에서 지구는 돈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태양은 정지한 상태의 별이 아니다. 태양은 은하계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으며 은하계는 다른 은하계와 상대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이 우주공간에는 절대 정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절대정지야 말로 절대적인 좌표가 될 수 있으나 불행히도 우리의 좌표는 임의 좌표이지 절대좌표는 될 수 없다.
새로운 천문학에서는 지구의 태양을 상대로 하는 공전을 태양 인력(引力)이기보다는 시공간에서 지구가 움직임과 태양의 움직임이 각각인데 공전의 현상은 그 교차되는 현상의 일부라고 한다.
다시 말해 지구는 달아 날려하는데 태양이 억지로 붙들어 매여 두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말은 기존의 순서 있는 가치를 무너뜨리는 관념이다.
우리는 순서 있는 관념에 너무나 익숙하여, 순서 없고 앞뒤 구분되지 않는 사물을 뭔가 잘못된 것처럼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의 “한”의 모습을 / 스스로의 모습을 천시(뒤틀린 사대)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이면서 동시에 많음이란 순서 있는 논리로서는 설명이 안 되며
부분이면서 전체를 말하는 ‘한’은 분명히 기존 자연과학적 논리로서는 설명이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그것이 흐리멍텅하고 사리 분별없는 것처럼 치부되기 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민족의 사유방식에는 면면히 이어져와 ‘핫바지’의 앞뒤 구분 없는 모습과 세계에서 앞뒷면이 같은 유일한 동전 화폐인 엽전(상평통보) 등으로 현실 물건에서 표출된다고 본다.
실제로 지판(支阪:일본)에게 강점 당하였을때 그들이 비아양거리는 말로 조선인은 ‘핫바지’라고 표현하면 그 말이 아직도 앞뒤가리지 못하고 사리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하하여 이르는데 쓰이기도 한다.
정말 앞뒤가리지 못하고 사리분별 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게 말하는 이가 정말 수준 낮은 사고(思考)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합바지와 엽전은 그야말로 한의 모습을 현실에 담아낸 모습이며 그 모습에는 우주를 아우를는 관점이 들어 있다.
우주에 순서가 있다면 그것은 임의의 점이지 절대적인 위치란 있을 수 없으므로 처음과 끝의 순서란 없다. 천부경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을 그대로 사물에 적용한 사례가 바로 핫바지이며 엽전이며 이는 우주의 모양을 담고 있다.


무얼해도 세번은 해야

 메소포타미아-그리스-유럽기독교-현대철기본적인 틀은 ‘선’과‘악’의 이분법이다. 그리고 지나 또한 ‘음’과‘양’의 이분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선과악이 음과양이 있으므로 시작에서 끝으로 진행되는 시간성을 가지고(始原)있다.
이와 다르게 한국의 사고의 근본적인 틀은 삼분법이다.
세계 어느 겨레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럼 무엇이 삼분법이냐고 묻는다면, 아직 삼분적인 사고를 체계적으로 사상철학화를 완성한 단계는 아니지만, 사상을 엿볼수 있는 우리겨레의 언어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그 예로서, 단군조선의 역사적 사실을 신화화 과정에서 한인.한웅.한검의 삼위일체적 신관(발해시대에 로마에 영향을 주어 기독교 삼위일체 신관 정립에 기여함), 천부인 3개, 칠을 세 번 더한 수를 21일이라 하지 않고 삼칠일이라 하는 것, 무엇을 해도 세 번은 해야 한다는 등,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 문양, 삼태극, 네거리보다 삼거리를 선호하며, 가장 선호하는 숫자가 3이라는 것도 단순히 우연한 일은 아니다. 이러한 ‘삼’에 대한 집착은 인근 지나(중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지나의 사상적 배경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 년놈 」과 택호(宅號)

 나라에는 국호(國號)가 있으며, 기업,가게에는 상호(商號)가 있다.

그리고 가정(家庭),집안에는 택호(宅號)가 있다
지금은 도시문화로 거의 사라져가는 모습이지만 아직 농촌지역에 남아있는 모습으로 ‘택호’를 부르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농촌마을은 현연관계 씨족의 공동체로, 농사 생산수단 공동체로 형성되어 왔으며, 그 가운데서 가정이라는 단위에 부여하여 부르는 것이 택호이다.
택호는 보통 한가정의 최고 연령자인 아내의 출신지역(고향)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누가 특별히 지어주거나, 주변에서 자연스러이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집안의 아내인 당사자가 정하여 이웃사람들에게 공포(?)하는 한턱내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로서 한집을 일컫는 이름으로 택호는 그 집의 여인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여인이 스스로 정하여 마을사람들에게 알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여인이 정한 이름으로 그 집을 부르게 되며, 그 집을 일컫는 실질적인 대표성을 띄게 된다.
여기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익히 아는 집의 대표자는 가장(家長)이라 하여 집안의 최고 연장자의 남자로 알고 있으나, 우리의 전통적인 호칭과 관습은 이와 반대로 여성에게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유럽사회의 여자가 결혼하면 자기출신 성(姓)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르는 문화와는 확연히 다르며, 임란(壬辰倭亂) 이전까지 족보(族譜)에도 나란히 기록되고 제사(祭祀)의 부담과 상속(相續)의 권리도 남자와 구별 없이 동등하게 했다는 내용보다 한 단계 더 올라선 “여성중심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정통관습이라 하겠다.
이와같은 ‘여성중심’의 사고는 우리의 언어에도 남아 있는데, 그 예로 우리가 흔히 남자와 여자를 합쳐서 지칭할 때 ‘한자’음으로 ‘남녀(男女)’라고 하여 남자가 먼저오고 여자가 나중온다, 마치 북한이 ‘북남회담’이라고 남한이 ‘남북회담’이라고 하듯이 어느 것을 중심을 두는 쪽을 먼저 말에 앞에 두는 것이다.
이에 반해 남자와 여자를 일컫는 우리말로 ‘년’과 ‘놈’이 있다.
지금은 언어의 시대적 변화로 듣기에 심한 ‘욕’으로 변질되었지만, 우리말에 표현하는 여자와 남자의 말로 합쳐서 부르는 말은 분명히 “년놈”이며, 이말의 앞에 오는 것은 지나(중국)의 사고(思考)와는 달리 여자를 앞에 두어 일컫고 있으니, 이 또한 우리 내면의 오랜 관습에는 “여성을 중심에 두는 것”이 우리 사고(思考)의 틀이라 하겠다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너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열매는 하나도 따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되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안에 있는 모든 나무열매를 먹을 수 있으나 죽지 않으려거든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열매 하나만 먹지도 말며 만지지도 말라하셨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3:1-4)

인류 최초의 갈등과 혼란이 비롯되는 모습이다
“하나도”와 “하나만”으로 상반될 수 있는 “하나”의 의미는
태초부터 현재까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있다.

예를 들어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동산안에 있는 나무열매 가운데 한 나무만 먹지 말라
고 하더나?’ 라고 물었다면, 여자의 대답은 ‘그래’하고 짧게 끝나버리고 더이상 뱀은 여자
에게 말 갖다 붙일 빌미가 없어 대화는 끝나버리고 여인의 갈등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뱀은 여인에게 “하나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듣기에는 ‘하나(one)’로 들을 수
있지만, 동산안에 있는 모든 나무열매를 포함하는 ‘하나(many)’라는 개념이기도 하므로
여자는 이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였고, 반론은 다시 논쟁이 성립되고
여자는 이미 ‘하나도’와 ‘하나만’의 개념의 혼동에서 스스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뱀의 제안에 동조하게 되면서 인류의 ‘원죄’는 시작된다.

그리고 인류는 아직 ‘하나’의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0-07-01

홍수주의보

인생이 너무 길다.
잊은 것은 잃어버린 걸일까


홍수주의보에
강물은
태고의 시간을 옮기고 있다.


상류에서 잊어버린 것도 잊은 것도
잛은 인생에 길지 못했던 추억처럼
하류에 닿는 길은 멀기만 하다.



2000-04-01

20년전

 20년전에 죽은 이와

10년전에 확인했어야 할 약속이

오늘 또 나는 무얼 약속하며 목숨을 잇고 있나
10년 후
30년전의 약속으로 다시 돌아와
넌 사는게 무어냐고……



2000-03-12

하나(한울:天符經)

 

모든 비롯함은 없음에서 하나로 나온다   
 그 하나를 세가지로 끝없이 나누어도 다함이 없다
 첫째 한가지는 하늘이며, 둘째 한가지는 사람이며 셋째 한가지는 땅이라     
 하나하나가 모여 열이되나 짜여진 틀 없는 셋으로 나아가                      
 하늘이 두가지로 셋 되고 , 사람이 두가지로 셋 되고, 땅이 두가지로 셋 된다.
 나아가 셋 짝은 여섯이 되고, 일곱 여덟 아홉을 낳고,                            
 셋과 넷을 굴리고 다섯과 일곱을 고리 이룬다                                  
 하나의 깊은 힘은 만번 오고 가도 그 쓰임은 변하지 않으며,                  
 그 마음 바탕은 해와 같이 밝으며, 사람의 가운데에 하늘과 땅이 하나됨이라
 모든 끝은 하나되어 없음으로 돌아간다    

 


삼일신고



禁 相 爛 途 淸 心 無 之 栽 陸 轄 明 功 神 求 無 大 四 ▣

觸 雜 寒 曰 壽 氣 厚 眞 物 遷 七 暗 完 攸 子 漏 德 方 蒼
一 從 熱 感 濁 身 薄 性 繁 乃 百 苦 者 居 降 昭 大 虛 蒼
意 境 震 息 夭 心 下 無 植 成 世 樂 朝 塋 在 昭 慧 虛 非
化 途 濕 觸 身 依 哲 善 人 見 界 不 永 靈 爾 靈 大 空 天
行 任 觸 轉 依 性 保 惡 物 象 爾 同 得 諸 腦 靈 力 空 玄
返 走 聲 成 精 有 返 上 同 神 地 一 快 哲 天 不 生 無 玄
妄 墮 色 十 有 善 眞 哲 受 呵 自 神 樂 護 神 敢 天 不 非
卽 生 臭 八 厚 惡 一 通 三 氣 大 造 爾 侍 國 名 主 在 天
眞 長 味 境 薄 善 神 眞 眞 包 一 塋 觀 大 有 量 無 無 天
發 肖 淫 感 厚 福 惟 命 曰 底 丸 世 森 吉 天 聲 數 不 無
大 病 抵 喜 貴 惡 衆 無 性 煦 世 界 列 祥 宮 氣 世 容 形
神 歿 衆 懼 薄 禍 迷 淸 命 日 界 神 星 大 階 願 界 神 質
機 苦 善 哀 賤 氣 地 濁 精 色 中 勅 辰 光 萬 禱 造 在 無
性 哲 惡 怒 眞 依 三 中 人 熱 火 日 數 明 善 絶 桑 無 端
通 止 淸 貪 妄 命 妄 哲 全 行 震 世 無 處 門 親 桑 上 倪
功 感 濁 厭 對 有 着 知 之 灣
界 盡 惟 萬 見 物 一 無
完 調 厚 息 作 淸 根 眞 物 化 海 使 大 性 德 自 纖 位 上
是 息 薄 芬 三 濁 曰 精 偏 游 幻 者 小 通 一 性 塵 有 下

2000-03-08

『선비』란

 선비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으로 사전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으며
일반인들이 알기로 이와 같으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선비 : [명사] 1. 지난날,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 2. ‘학덕을 갖춘 이, 또는 학문을 닦는 이’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 3. ‘어질고 순한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출처: Naver국어사전 >>
이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현대사회에서 “선비”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그것은 옛날 답답한 시절 고루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의 모습쯤으로 알고 오히려 폄하적인 반응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에부터 나의 선비에 대한 생각은 시작된다

그럼 무엇이 잘못 되었다는 건가?
일반인이, 사전에, 알고 있는 것과 기록된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이렇게 잘못된 인식의 원인은 우리의 교육에 기원된 것이라
'선비'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것인 것 쯤은 다들 알고 있지만
어느 때부터 이 말이 쓰여 졌는지, 지나(중국)에서 유래 되었는지, 순수 우리겨레의 것인지
아무도 모르며, 그러기에 그 개념 더더욱 알 길 없다
먼저, 지나의 "선비 사(士)"의 개념과 우리의 선비는 그 어원의 출발부터 다름에도 불구하고
처음 우리의 선비 개념이 공자의 학문이 전래된 천여년 세월에 지나의 그것(士)과 혼용되거나
아예 지나의 士의 개념으로 둔갑한 상태이다.

선비란 지나의 士가 아니다
선비란 지난날 골방에 틀어 밖혀 책벌레가 아니다
선비란 경제력 없어 굶는 생활이 다반사인 그런 인물상이 아니다
선비란 시대를 무조건 거부하며 초야에 묻혀 지내는 학자가 아니다.
선비란 어질기만 하고 제것도 못 지키는 그런 이가 아니다



1999-01-20

중요한 것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한 것이 아니다.  



1998-09-09

변종이 되고 싶다

 

 

露가 지나고 이틀

잠 못드는 이의 귓가에는 아직 가을이 이른데

가을엔 뀌두라미 울움 뿐이더냐

온갖 잡벌레 소리 잠들고 싶은 이의 안면방해가 심하다.

그래, 세상이 변하니

풀벌레인들 변종이 없으랴

뀌뚜라미 사촌도 있을 꺼고

뀌뚜라미 오촌도 있겠지

오늘을 사는 나

나도

변종이 되고 싶다

1998-04-05

춘야(春夜)

가만이 있어도 서글픈 때이거늘

뒤뜰에 桃花 빗물에 떨구니
님께서 허락하신 밤
千年의 기억인 듯 아득하오

살아선 다시 못 볼 그림이기에
달도 없는 이 밤
그대 땅속의 시간이
내 호흡으로 살아 오른 듯 하오

열기 가득 내 호흡을 가누던 그 숨결
사람 없는 밤거리에 지금
물기 흥건한 흙내음으로부터
다시금 일듯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