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3-15
2006-03-13
2006-03-11
2006-02-20
불안
잠들수 없는 시간
무엇할 까닭 없는 시간
남은 시간 정할 권한 우리에겐 없어
하루하루 헤아리는 시간
몰아쉬는 한쉼에
팔십년이 한 순간마냥 갔다 왔다
끝에 대한 불안은 끝없이 이어간다
겨우내 차가운 강가에 촉새풀 싱그러운 때도
장마비에 물고트다 흠뻑 젖은 때도
나락 수북히 실은 구루마 위에서 바라보던 서녘 노을진 때도
마른 흙덩이 먼지 흩날리는 보리밭 서래위에 나를 앉혀 두었던 때도
팔십년의 한켠에 묻어 있어 그리움이 되겠지
어찌 가실거나
어찌 보낼꺼나
나도 절반을 훌쩍 넘긴 때인데
아직 이 모양이니
아직은 건강하소서
2005-09-20
2005-08-18
독도 연표
백두산 정계비 설치
청 황실은 선조의 발상지로 영산으로 여기는 백두산을 청의 영역 아래 두고자
서기 1677년 청(淸)조 강휘제 16년 내대신 우무누[武默訥(무묵눌]로 하여금 백두산을 답사하도록 함.
서기 1684년 청은 변장,러추(勒楚)로 하여금 압록강 상류를 통한 백두산 답사를 하도록했으나
답사도중 조선인에게 함부로 총질하다가 도리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어 답사가 실패로 돌아감.
목등[穆克登(목극등)]의 백두산 탐사
서기 1712년 2월 우라총관(오랍총관) 묵등(穆克登) 일행 백두산 탐사에 조선이 동반협력해 줄것을 요구하여, 조선 의정부우참찬 ‘박권’을 접반사로 하고 함경도 관찰사 ‘이선부’가 압록강 상류에 있는 후주(厚州)에서 이선부 일행과 만나고, 5월4일 혜산진에 도착하여 조선 접반사 박권 일행과 만나서 백두산으로 출발하여 5월 11일 백두산 천지에 도착하였다.
정계비 건립
묵등 일행은 백두산 천지에서 내려오면서 조선과 청의 국경으로 인정되는 분수령에다가 주변을 더 살펴보고 경계비를 세우기기로 하여 1712년 5월 15일 정계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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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첩식(글쓴이) 소이창, 통관 이가, 조선군관 이의복 조대상, 차사관 허량. 박도상, 통관 김응헌. 김경문
2005-08-15
2005-08-04
‘조·중 경계〓토문강’ 확인(조선일보)
고구려재단, 백두산 정계비터 찾아내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1712년(숙종 38년) 조선과 청이 국경 확정을 위해 세운 백두산 정계비의 위치를 한국 학자들이 확인했다. 현장 확인 결과, 정계비에서 두 나라의 경계라고 밝힌 ‘토문강(土門江)’은 두만강이 아닌 송화강(松花江) 지류임이 분명해졌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金貞培)은 3일 지난달 19일부터 30일까지 북한 학자들과 북한 내 고구려 유적을 공동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백두산 등반길에서 정계비가 있었던 곳을 확인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정계비 터가 있던 곳은 백두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주차장의 군 초소 뒤편이었다. 이곳에는 원래 정계비를 세워놓았던 받침돌과 북한이 1980년 그 옆에 세운 글자 없는 흰 비석(높이 45㎝)이 있었다. 김정배 이사장은 “주차장 근처에 정계비 터가 있다는 증언과 주변 지형, 중국어판 북한 지도에 천지에서 동남쪽 4㎞ ‘백두산 사적비’로 표기된 지점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조사에 참여했던 고구려연구재단 배성준 연구위원은 “정계비 터에서 동쪽으로 바라봤을 때 송화강의 지류인 마른 물줄기가 보였고, 두만강 상류인 홍토수(紅土水)와 석을수(石乙水)는 전방의 대각봉(大角峰) 너머에 있었다”고 말했다. 백두산 정계비는 “서쪽으로 압록, 동쪽으로 토문(土門)으로 경계를 삼아 그 분수령에서 돌에 기록한다”고 쓰여 있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 때 없어졌다. 중국은 토문강이 두만강의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두산 정계비가 있던 자리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광경.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흐르는 토문강(송화강 지류·점선)의 마른 물줄기만 보일 뿐 두만강 상류는 대각봉(가운데 산봉우리)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계비는 압록강과 토문가의 분수령에 세워진 것이다. 작은 사진은 북한이 정계비터에 새로 세워놓은 비석. |
2005-08-03
백두산 정계비터 정확한 위치 찾았다
[오마이뉴스 2005-08-03 15:35] [김태경 기자]
▲ 북한이 세운 백두산 정계비터 표지석. 검은색 돌은 지난 1712년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당시 사용했던 주춧돌로 보인다. ⓒ2005 고구려연구재단
▲ 백두산 정계비터에서 바라본 토문강의 흔적. 가운데 빨간 색 타원 안이 토문강이 흘렀던 곳으로 추정된다. ⓒ2005 고구려연구재단 |
광복 뒤 처음으로 백두산 정계비터의 위치가 남측 학자들에 의해 확인됐다. 그동안 남한 내에서는 정계비터의 정확한 위치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지난달 19일부터 30일까지 방북해 북한 학자들과 고구려 유적 공동 조사를 벌였던 고구려 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 측은 이번 방북 기간 중 백두산 동남쪽 4㎞ 지점(해발 2200m)에 있는 백두산 정계비터를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3일 밝혔다.
백두산 정계비는 지난 1712년 세워졌으나 지난 1931년을 전후해 일제가 철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광식 재단 상임이사는 “백두산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주차장 모퉁이 북한군 초소 뒤에 백두산 정계비터가 있었다”며 “북한을 통해 백두산을 등정한 남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북한군 초소 뒤에 있는 이 정계비터를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재단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백두산 정계비를 세울 때 사용했던 주춧돌이 있고 그 위에 북한 당국이 지난 1980년 세운 흰색 비석이 있다. 일종의 표지석같은 이 비석에는 아무 설명도 없어 그냥 봐서는 백두산 정계비터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고구려 연구재단의 배성준 연구원은 “북한에서 출판한 중국어판 백두산 안내서에도 이 곳을 ‘백두산 사적비’라고만 했을 뿐 정계비터라고 표기하지 않아 직접 설명을 듣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62년 중국과 국경 협정을 맺은 국경선을 확정한 북한 당국이 간도 문제 등 민감한 문제가 얽혀있는 백두산 정계비터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 이사는 “그러나 초소에 있는 북한군들은 모두 이 비석이 백두산 정계비터를 확인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배 연구원에 따르면, 백두산 정계비터를 보면 원래 백두산 정계비에 새겨져있던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門)’라는 말의 뜻을 알 수 있다.
즉 백두산 정계비터에서 볼 때 서쪽으로는 압록강이 흐르며, 동쪽으로는 토문강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 청나라는 토문강이 곧 두만강이라고 주장했으나 두만강의 발원지는 백두산 정계비터 앞쪽에 보이는 대학봉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토문강은 송화강의 한 지류다.
안악 3호분 등 남쪽 학자들에게 처음 공개
이에 앞서 지난 3월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는 여러가지 자료 등을 토대로 “장군봉으로 올라가는 주차장과 북한군 초소 부근에 정계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재중동포들이 제작해 지난 1997년 9월 14일 KBS가 방영한 <일요스페셜> ‘최초공개 북한에서 본 백두산’에서도 정계비의 주춧돌 모습이 나온다.
그러나 남쪽 학자들이 백두산 정계비터의 모습이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이번 남북 공동조사에서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원들은 덕흥리 고분, 수산리 고분, 안악 3호분 등에서 벽화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유리벽 안에 들어가 직접 벽화를 촬영했다.
고분 벽화 사진을 촬영한 김진순 연구원은 “이제까지 공개된 고구려 벽화고분 사진은 그리 자세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아주 자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조사에서 그동안 알려진 ‘강서 소묘’의 도면이 잘못된 것을 확인했다. 강서 소묘의 도면은 일제 시대 때 잘못 제작된 도면이 이제까지 그대로 통용되어 왔으며 북한 학자들도 이 사실을 몰랐다. 안악 3호분·태성리 3호분·인민 대학습당 부근의 평양서 각석은 이번에 처음으로 남측 학자들에게 공개됐다.
김정배 이사장은 “이번 조사는 광복 뒤 처음으로 이뤄진 고구려 유적 남북 공동조사였고 새로운 성과도 있어 고대사 연구에 새 계기를 마련했다”며 “우리 재단은 이번 공동조사에서 남북 학자간 주고받은 논의 내용을 정리해 앞으로 남북 공동 학술토론회로 연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안악 3호분의 무덤 주인공을 놓고 중국의 망명자인 ‘동수’설과 ‘고국원왕’설(북한 쪽 주장)이 맞서고 있다. 북한 쪽은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한 공동학술토론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