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절할 그 무엇 있으랴
한생각 온 시간 메운다
조절할 그 까닭 있으랴
평지에 돌출한 꽃무릇
이름하여 상사화라
햇살 좋은 이른 봄
짙푸른 잎 키워내고
여름 오니 시들어 흔적 없더니
늦은 여름 화려한 분홍 웬일인가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해도
한뿌리 한 몸이라
수풀의 시끄러운 소리
그냥 벌레소리라 하고
아무도 어느 벌레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느 벌레의 명멸해가는
아우성일지도 모를 여름 밤
아무도 기억하는 이 없이
어둔 수풀에 잠기고
선풍기 모터소리
시끄러움이라 말하지 않는다
비 뿌리는 하늘을 삼킨 흐린 바다가 울고 있다
빗줄기와 파도가 부서지는 방파제 끄트머리
한 뉘를 같이 하여도 외로운 이 홀로서 울고있다
촌년 오십년을 바랜 산천은 누구에게 기억되나
늙은 애비 보듬지 못 한 시간 가슴에 쓰라리니
홀로 남겨진 시간 그 누가 알아 줄건가
사랑이여! 니가 거짓이라면 죽음까지 이르르고
슬픔이여! 니가 참말이면 너 남은 시간 일러라
비 뿌리는 좌표 없는 바다에 홀로 남겨진 촌년이라
어쩌랴
오고 감을 정한 거 아닌데
슬픔은 가슴을 쓰리는 거
몇 날에 비내려 수백미리
아득한 어미 기억에 돌아갈제
비 끝에 씻기운 탯줄 쓰라림
여름 하늘 파르하지 않아
턱 받치는 더위에 흐린 구름
저 하늘을 넘고 싶다
단절에 가는 이
이미 내 안에 와 있는데
슬픔은 분별에 있어 칼질하나니
윈도부러쉬 부러져 흐르는 비
이대로 끝나지 않을 시간이라면
질퍽임은 양수(羊水)에 귀의(歸依)라
뿌연 구름 먼 산 넘어가고
해석하지 못할 교감(交感)에 혼돈(渾沌)의 시간
그리움은 영원에의 희망이라
새녘바다 달 떠오르고
삼백리길 지나
한 밤 대숲에 가리우다
대숲 바람은 어둠에서
파도 소리 잘게 부셔온듯
발끝 뜨락에 떨구어지다
한뉘에 거듭없을 내음에
내 취함은 짤아도 모자라다
아니 내 취함은 섭리(攝理)인듯
능동(能動)이라 했던가
새벽 바람
어두운 대숲을 훓고
흔들림에 스치는 소리
분답한 일상을
새녘바다 물결에 씻어내고
댓잎에 털어 어둠에 날리고
자연(自然)으로 보고 또 보매
나 취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