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없는 강물은 영원같고
강바람은 잠깐에 기댐이라
한걸음 물러서면 억겁을 달리하고
한걸음 다가서면 순간에 불살러라
욕심에 둘 수 없어
선물처럼 감사하여
바램은 평온 뿐이라
물기어린 숨결은 허덕이는 시간되고
욕심은 쓸쓸한 체념이 되어
그 아닌 느낌 아는 건
쓸쓸함도 익어가는 넉넉함이라
강 폭이 불규칙한 긴 강이 있다.
상류부터 그 강줄기를 함께 흐르지는 않았지만
강 중류에서 만나 강 하나 되어 흐른다.
처음 시냇물부터라면 많이 섞였겠지만
중간에서 만난 때론 가깝게 때론 멀게
강 이쪽 저쪽을 가르며 흐른다.
어쩌면 바다에 이를 때까지 온통 섞임이 없을지라도
때론 많이 때론 조금이라도
강물은 하나되어 흐를 것이라
숲속으로 잠긴다
곧 어두어 지겠지
한낮의 열기도 이슬되어
가라앉을 밤이 오겠지
제 아무리 하루가 아쉬워도
긴 밤 지새울 수는 없겠지
뿌리 뽑아 던진 잡초도
내일이면 시들어 마르겠지
그러니 염려할 일 없다
어느
양초 상표명이 연상되는 말이다
소원성취
무엇이 소원인가
돈과 명예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에 아픔과 고픔이 있을거라
그러나 더한 것이 있으니
관계와 시간
관계는 존재의 형식이고
시간은 존재의 현실이라
시간은 언제나 아쉬움뿐이지만
아쉬움에서
오랜 꿈과 영원을 함께 느끼는
소원성취라
전화기 소리가 요란하다.
잠결에 이 시간 웬 전화?
-알람이다.
양력 구월오일 음력 칠월이십사일
어머니 가시고 열이틀
이제 만 육년이 지나는
아버지의 가신 날이다
가시는 날
가슴에 얼굴을 묻고
채 식지 않은 체온이
삼십여분만에 싸늘히 식어가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세월이 또 이만치 흘러가고 있구나
부모란
전쟁터에서 후방기지와 같은 것
언제나 나를 지원하고
마지막 보루로 나를 지켜주고
기댈 언덕인데
후방기지를 잃고
시간은 또 그렇게 흘러
이제 내가 자식들에게
후방기지가 되어야 할 시간
세월은 또 그렇게 가나보다
내것이 아닌 것으로 나를 증명하여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
제 목 위에 얹힌 입은 침묵하고
남 모가지에 얹힌 말로 해야만
제 머리가 붙어 있는 시대
제국의 마지막 몸부림은
끝내 쓰러지고
옆집 아저씨 손잡아 일어 선다지만
사람 모가지 위엔 제국은 간데 없고
민국은 아득하다.
옆집 아저씨와 앞집 도둑은 이웃일 뿐
여전히 살아남는 문제는
무엇을 침묵하여야 하는지
무엇을 증명하여야 하는지
살아 남은 자는 알고있다.
고요한 곳에 쓸쓸한 때이라
적막(寂寞) 그것은
그렇지 않음에 느낌이 있기 때문이라
마주 따스함이 남겨지고
마음 길은 영원에 닿았어라
거기까지
단편(短篇)의 때는 아쉬움이고
동댕이쳐진 곳때(時空)
습(濕)한 비가 내린다
팔월의 짜투리 젖은 내음이
호흡을 옥죄이다
외로움 그것은
그 아님이 있기 때문이라
눈이 어두어
시간에 덧칠하다
덧칠이 낡음도 시간이라
낡음에 빛깔이련가
아차!
덧칠은 벗어날 수 없는 섞임
섞임에 벗지 못할 일이라
되물릴 수 없는 빛깔은
소멸할지라도 어이할 수 없음에
나는 통곡한다
평지에 돌출한 꽃무릇
이름하여 상사화라
햇살 좋은 이른 봄
짙푸른 잎 키워내고
여름 오니 시들어 흔적 없더니
늦은 여름 화려한 분홍 웬일인가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해도
한뿌리 한 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