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에 벗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내 눈에 너절한 종이 가루 같다
겨우내 서릿발로 꼿꼿하더니
우수(雨水) 지난 비에 눅눅하다
사각거리는 대숲엔
늦겨울 시린 바람 밀려나고
귓볼 간지런 바람 찾아든다
그토록 찢어지게 너덜한 겨울은 가고
봄 날에는 분홍 빛 만으로도
넉넉한 그리움으로 채워 지겠지요
한 조각 바람이 씻겨간
골 깊은 고요는 태고인듯 한데
알피엠 이천사백 엔진소리로 흐른다
한 나절 때가
녹아내리는 봄눈 보다 짤디 짧지만
마른 저수지에 한 웅큼 길러 넣듯
겨를을 채우나니
좀 더 시절을 더한다면
참 편한 삶이라 여길만한데
차창에 흐르는 봄비 젖어들듯
씻겨가는 바람에 기다림만 남는다.
엊 저녁 처음 보았던 너라
날 새고 뭇별들이 밀려나고
햇빛에 너도 볼 수 없었구나
하지만 잊은 듯 하루가 저물면
내 뜰에 다시 별이 되어 이르겠지
정작 밤에 지고 낮에 뜨는 별이라
빛과 함께하지만 그 빛에 볼 수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