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새 길이지만
가을 어느 날
걸러진 햇살에
물들린 산천은 그대로다
어제/오늘/내일은 다르겠지만
지난해/올해/다가올해 마찬가지라
사람은 낮설지만
가는 길은 여전하다
기다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기다렸은 기억되지 않는다 가을은 깊어가고 시간은 다만 마른 잎 떨구어 흩어낸 어즈러움을 미안하다 시간이여 |
오름의 턱받이에 텁텁한 물기는
쥐어짜면 금방이라도 흐를 것 같다
넘어서는 오름에 불어오는 바람은
갓 씻어낸 가슴에 물기 훔치는 듯하다.
오름이라
바람이 씻어 만들었나 보다
뭉글뭉글 너울대며 스며드는 부드러움이
상기된 가슴 보다 더 한 것 같다
나 아닌 다른 이를 너라 이르고
내게 너를 누구라도 그럴 이라 이르지만
나 역시 너에게 누구라할 이가 되는 걸
너를 기억하는 것은
너에게 내가 기억됨이 알길 없기에
내 심한 외로운 기억이라
기억의 시간만큼 기억을 더할 제
아무도 기억할 이 모를 것이기에
믿어지는 오늘에 공허함이라
그리고
난 누구에게라도 아무나로부터
기억에나 시간으로부터
풀어져 마냥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