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가운데 바위가 있었다
바위는 밭 갈이 할 적에 늘 비켜 가야만 했다
어느 날
바위는 떠났다
이제 밭 갈이 할 적에 비켜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밭 갈다 힘겨울 때 기대어 쉴만한 곳이 없다
드넓은 밭을 쉼없이 날이 저물도록
밭만 갈고 있다
밭 가운데 바위가 있었다
바위는 밭 갈이 할 적에 늘 비켜 가야만 했다
어느 날
바위는 떠났다
이제 밭 갈이 할 적에 비켜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밭 갈다 힘겨울 때 기대어 쉴만한 곳이 없다
드넓은 밭을 쉼없이 날이 저물도록
밭만 갈고 있다
안개 묻은 비가 내린다
이월의 첫날
입춘은 삼일 앞
봄은 아니나
겨울이 품은 봄이라
겨우내 응달 눈이 비에 젖는다
허연빛 마른잎 젖어 다시금 짙은 꿈에 드리운다
바라는 건
더디 올 봄에 더디 갈 봄이라
해서
떠나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다
안개 묻어 스치는 북유럽 겨울 같은 바람에
스산한 미련조차
잊어간다
어째 그리도 추웠던지
손등이 다 갈라졌었는데
깔비 내버려 둔 시간
쌀쌀한 추위 그대로지만
깔비 드리운 자리 예 달라
저 숲 땅에 내 발길에 앞서
선조의 숨결이 말없이 잠들고
오늘에 소나무 참나무
다툼인가 어울림인가
시대를 말하는 나
지나서 어느 때까지
어울림도 다툼도 같으랴
선조의 호흡을 천년에 기억할까
깔비 : 소나무 낙엽을 이르는 영남 지역 말, – 경기 지방 말 : 솔가리
어는 비는 내리지 않는다
겨울 응달에 쌓인 눈
얼마간 겨울비에 녹지 않는다
불꽃같은 사람의 뉘에
시간만 급하다
겨울비는 마르지 않는다
밤이 되고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대로 부여 잡을 수 있는 겨울이라면
좋겠지
멈춘 시간 멈춤 고요
눈이 아니더라도 하얀 밤은
다시 휑한 아침에 지워지겠지
가만히 두어도
어는비는 마를꺼라
따스함이 없더라도
춥지 않으면 살만한 것
기쁨이 없더라도
슬프지 않으면 되는 것
즐거움이 없더라도
괴롭지 않으면 좋은 것
여러번 선택된 모습을
좋아한다 한다
좋아한다
좋아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용납하는 것일지니
받아 들이는 것일지니
좋은 것은 없다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내게 있으니
있을 뿐이고
나 거기에
춥지 않고
슬프지 않고
괴롭지 않으매
고마울 뿐이라
누군가 있을꺼라
둘러보는 꿈결에 깨어나다
잔디 마당 찬서리 발끝에 닿으니
기울어가는 새벽달이 더 시리다
사랑
누군가 사랑이 삶일지라
달빛을 가르는 담배 연기
산너머 기차소리 조차 멈추고
밤새 기도 소리 그 어디에 흐르는가
나를 사랑하던 이
이제 어디서 이 새벽을 가르는
나를 위한 기도 소리 들을까
창백한 달빛은 솔숲에 가리워지고
아직 이른 새벽 가로등불 대신하는 때에
누군가는 없다
나를 사랑하던 이
안산에 누우신 뒤론 다시 못 들은 기도
내 당신 사랑이 그립습니다
한 개비 지푸라기마저도 바람에 쓸리고
비닐 들판 저 멀리 낮은 산허리에
시월의 해는 힘없이 드리울 때.
안산 밭 덤불엔
빛바랜 갈잎은 지난 밤 내린 비에 씻기어
후미진 골에 켜켜이 재워 진다
한 숨 한 숨 더하여 흐른다는 건
부여잡을 것 없어 두려움에 떠는 것인가
시간을 헤아린다
기다림도 없는데
소리쳤던 시간도
산너머 기차소리와 함께 멀어지고
바람이 대숲을 흔들어
차라리 아무것 흐름 없는 멈춘 공간도
시간은 헤아림으로 남는다
기차소리 다시금 들리고
여름같은 오월의 햇살은 내일에도 있을꺼라
헤아리지 않아도
천년을 앞서도 뒤서도 시간이였다
다만
내가 저 감나무 여린 잎을
천번을 볼 수 없다는 거
그것이
나로 하여금 헤아리는 자 되게 한다
기다리는 건 없는데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