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딛는 마른잔디
성그런 서리발이 좋다
애달픔도 서러움도
긴 밤에 얼어 죽었을
차가운 겨울 새벽이라
푸설한 일들에 그래도
또 하루란 매듭을 달고
밀려오니 새벽을 걷는다
문득 우린 만났지요
나뭇잎 물드는 그때
그뿐 함께는 없지요
다시 문득 만났지요
차 한 잔에 여유처럼
너울지는 바다 같이
만나야 할 까닭없어
우린 찾지 않았었죠
우린 문득 만나니까
세상에 태어나 사는 것
문득 주어진 인생사 듯
우린 끊어질 수 없겠죠
우리가 살아 가는 시간
문득 만날 날은 있겠죠
늦은 아침 허기지다.
가득찬 냉장고엔
우유가 한달이 지나고
밑반찬은 윤기 잃었다
깻잎은 시들어 썩는다
손에 잡히는 게 없다.
서리가 다 녹은
휴일 아침 할 일없다
산적한 일상엔 흥미없다
스팸 문자도 아침 나절엔 없다
날 오라는 곳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지난 밤 가을비 치고는 제법내렸는지
물에 젖은 찬바람은 아침을 씻어낸다
십일월 찬비에 피멍든 잎 떨구어 내고
푸르던 잔디 빛깔 하루가 다르게 빠져
십일월은 누구라도 물러서듯 쓸쓸하다
빈속에 한잔의 술은
온 살을 저미는 듯 하다
나무가 소리내는 건
바람이 스치울 때라
뿌리가 있어
옮길 수 없는 시간
바람에 띄우나니
봄날의 송화가루
이 가을 어디선가 흐를꺼라
천년뒤 DNA에도 남겨지기에
바람이 잠든 시간
플라스틱병 소주 640mm
바닥이 보인다
껍데기엔 ‘맛있는 참’이라 적혔다
욕 나온다!
세상을 지 멋대로 매겨놓았구나
소주가 맛있다 할 것이 아니다
그저 취하고 싶어 마시는 거라
노을이 질 때까지 더 많은 노래할 것을
땅거미 잦아들고 때는 저물었는가
바람에 밀리는 억새밭 언덕에 달 비치니
어둔 밤 사람의 길 멈추는 것만 아니다
멀리 수평선 고기잡이 불빛 이제부터라
파도가 닿은 마을엔 해야할 노래 많으니
새벽이 이를 때까지 고기잡은 배 맞으며
우리는 저물수 없는 오늘을 이어 가리라
인적없는 강물은 영원같고
강바람은 잠깐에 기댐이라
한걸음 물러서면 억겁을 달리하고
한걸음 다가서면 순간에 불살러라
욕심에 둘 수 없어
선물처럼 감사하여
바램은 평온 뿐이라
물기어린 숨결은 허덕이는 시간되고
욕심은 쓸쓸한 체념이 되어
그 아닌 느낌 아는 건
쓸쓸함도 익어가는 넉넉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