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스며들지 못하는 철이 지나다
단단히 부푼 모습
참담히 얼그러 맥없이 훑어내리니
천만년 그제에도 같은 때라
보풀어진 철에
다시 씨앗을 담고 꽃의 바란다
나의 삼십년 기억 못 할 세월 지나다
돌아보니 에워싼 고갯길 힌눈에 묻었고
트인 들판엔 인연없는 마을 점점이라
나 같이 삼십년 기억이 스쳐가는 이도 있겠지만
낮선 얼굴 다른 모습 어디서 왔다가 또 가는 거겠지
그 이름도 없어 은풍과 기천을 따라 풍기라
밤바다
초나흘 기우는 달을 등지고
겨울 무직한 바다를 바란다
물빛이 밤빛인지 모를 어둠에
하이얀 물거품 저것도 파도인가
이미 오랜 것인듯 반가움인데
수많은 거듭된 날들에 처음인가
저 어둠에 하이얀 것들처럼
끊이지 않을 물거품인가
열어두는 이와 한계(限界)하는 이
무슨 일 무슨 모습 일까
저 어둠에 쉼없이 밀려와도
넘지 못할 물거품 같아
幻想이였다 認定할 수 없는
이로부터 時間은 眞空되어 가다
한결이지 못함이 無常이던가
現實에 닿아도 부질없음인가
그대
그 길에 바랜 푯대라
내게서 나와 내게로 돌아오는 것
내 모르는 바 아닌 것을
비록
헛된 걸음일지라도
그 길에 묻은 흙 내음 풀꽃의 記憶은
나만의 것이며 나만의 人生이라
그래도 幻滅을 認定하지 못하는
眞空같은 時間이 여전히 흐른다.
잠들지 않는 시간이 누르고
사람의 기억은 모래 언덕을 넘는데
나의 기억은 어딘지 모른다
코끝에 실바람 닿고
이마엔 여린 햇빛 드리울지라도
내 감각은 무디어지나 보다
어느 때부터 인지 모르니
어느 때까지 일지 알리 없다
밭 가운데 바위가 있었다
바위는 밭 갈이 할 적에 늘 비켜 가야만 했다
어느 날
바위는 떠났다
이제 밭 갈이 할 적에 비켜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밭 갈다 힘겨울 때 기대어 쉴만한 곳이 없다
드넓은 밭을 쉼없이 날이 저물도록
밭만 갈고 있다
안개 묻은 비가 내린다
이월의 첫날
입춘은 삼일 앞
봄은 아니나
겨울이 품은 봄이라
겨우내 응달 눈이 비에 젖는다
허연빛 마른잎 젖어 다시금 짙은 꿈에 드리운다
바라는 건
더디 올 봄에 더디 갈 봄이라
해서
떠나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다
안개 묻어 스치는 북유럽 겨울 같은 바람에
스산한 미련조차
잊어간다
어째 그리도 추웠던지
손등이 다 갈라졌었는데
깔비 내버려 둔 시간
쌀쌀한 추위 그대로지만
깔비 드리운 자리 예 달라
저 숲 땅에 내 발길에 앞서
선조의 숨결이 말없이 잠들고
오늘에 소나무 참나무
다툼인가 어울림인가
시대를 말하는 나
지나서 어느 때까지
어울림도 다툼도 같으랴
선조의 호흡을 천년에 기억할까
깔비 : 소나무 낙엽을 이르는 영남 지역 말, – 경기 지방 말 : 솔가리
어는 비는 내리지 않는다
겨울 응달에 쌓인 눈
얼마간 겨울비에 녹지 않는다
불꽃같은 사람의 뉘에
시간만 급하다
겨울비는 마르지 않는다
밤이 되고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대로 부여 잡을 수 있는 겨울이라면
좋겠지
멈춘 시간 멈춤 고요
눈이 아니더라도 하얀 밤은
다시 휑한 아침에 지워지겠지
가만히 두어도
어는비는 마를꺼라
따스함이 없더라도
춥지 않으면 살만한 것
기쁨이 없더라도
슬프지 않으면 되는 것
즐거움이 없더라도
괴롭지 않으면 좋은 것
여러번 선택된 모습을
좋아한다 한다
좋아한다
좋아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용납하는 것일지니
받아 들이는 것일지니
좋은 것은 없다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내게 있으니
있을 뿐이고
나 거기에
춥지 않고
슬프지 않고
괴롭지 않으매
고마울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