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깊이 마른 땅에
게을맞은 비가 적시려나
비닐 덥지 못한 밭골에
제 몸 쭈구려 촉 틔운 감자
싹도 밀지 못한 푸석함에
게을맞은 비는 이도저도 아니다
겨울 지난 마른 풀
젖어 싸그러야 하나
묻은 먼지만 털리 울 뿐
게을맞은 비 분위기만 힘겹다
콧잔에 살내음
게을맞은 비처럼
쭈그려도 싸그리지 못한 인연은 푸석한 숨결된다.
한 뼘 깊이 마른 땅에
게을맞은 비가 적시려나
비닐 덥지 못한 밭골에
제 몸 쭈구려 촉 틔운 감자
싹도 밀지 못한 푸석함에
게을맞은 비는 이도저도 아니다
겨울 지난 마른 풀
젖어 싸그러야 하나
묻은 먼지만 털리 울 뿐
게을맞은 비 분위기만 힘겹다
콧잔에 살내음
게을맞은 비처럼
쭈그려도 싸그리지 못한 인연은 푸석한 숨결된다.
경산시 와촌면 명마산 바위면 글귀에 관련하여 몇몇 신문과 여러 블로그에서 인용하므로 옛날 일을 더듬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로 당시 생각과 신문기사 원문을 싣는다 |
[ 최초 기사 ] 동아일보 1982.01.17…(기사원문 인터넷에서 검색 불가능:2000년 이전 기사)경산 와촌면 강학동 명마산 해발 320미터 지점에서 발견된 선사암 각문은 경사 20도의 평평한 암반에 위에 문자가 새겨져 있어….[ 인용 『한철학-107쪽_김상일1983.8_출판:전망사』 |
위 인용 기사를 확인하고자 1988년 10월 2일(일) 현장 확인함. – 당시 소견 : 바위면에 나타나 있는 모양이 특이한 모양이나 첫째, 문자 또는 암각화라고 보기에는 형태의 연결 또는 단위의 구분이 어려우며 패여진 모양(단면) 또한 반원(나무가지를 진흙에 반쯤 찍어을 때 나오는 모양)형태로 사람이 도구를 사용해서 새겼을 때 시간에 의한 풍화현상으로 테두리가 부드러워지는 데 비해 테두리가 날카롭게 선명하여 사람의 손에 의한 새김 보다는 암석의 형성 또는 풍화 과정에서 자연발생된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둘째, 비위가 놓여진 위치의 산은 약간(경사면 30도 정도) 가파른 산으로 바위의 재질이 인근한(8키로 정도) 팔공산의 흔한 화강암이 아니라 그 산(명마산)의 주된 구성 암석인 퇴적암으로 바위가 놓여진 위치에서는 암반이 흔하게 노출되지 않은 지점이라서 유독 이 바위에 가득 글귀 또는 암각화를 새겼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음.추정 : 고대 문대 또는 암각화로 사람의 의한 창작물의 가능성 또한 있으며 그럴 경우 문자 또는 그림으로 고고학적 가치를 가지므로 간혹 신문지면에 오르내리게 된 것 같다. 좀더 세밀한 조사를 통해 밝혀 볼 필요가 있음 |
꽃이 핀다고 한다
뒷뜰 산수유 벌 비행 소리 잦아들고
동네 어귀 개살구꽃 화사하다
양지 바른 마당에 뾰족한 새싹 잔디
햇살 아래 말이 없다
어느 집 담장 높이 하얀 목련
꽃상여 날리듯 하늘을 향하고
저 멀리 안산 마루 아직 잔디는 누른데
말 없는 봄 햇살에 더한 가슴 미어진다
권덕규(權悳奎:1890∼1950)는 그의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1923)에서 “훈민정음은 그 이전 조선 문자의 부흥(復興)”이라 하며 ① 삼황내문(三皇內文), ② 신지비사문(神誌秘詞文), ③ 법수교비문(法首橋碑文), ④ 왕문문자(王文文字), ⑤ 수궁문자(手宮文字), ⑥
남해도 지면암 석각문(南海島地面巖石刻文), ⑦ 각목자(刻木字), ⑧ 고구려문자(高句麗文字), ⑨ 백제문자(百濟文字), ⑩ 발해문자(渤海文字), ⑪ 고려문자(高麗文字) 등 11가지를 내세우고 이를 다시 남북 양파로 분류하여 ① 북파(北派):단조(檀祖)→부여(夫餘)→고구려→백제 또는 발해, ② 남파(南派):신라→고려로 구분하였다. |
□ 남해 상주리 석각(도지정문화재) – 지정번호 : 기념물 제 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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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읍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상주로 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두모마을 표지석과 함께 두모포로 가는 길이 나온다. 두모마을 표지석에서 상주쪽으로 5백여m 가면 길 왼쪽에 금산 부소암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2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상주리 석각’이라 부르는 글이 새겨진 거북바위에 닿는다. 천하를 통일한 중국 진시황이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시종 서불을 불렀다. “서불아 너에게 동남동녀 500명을 줄 터이니 불로초를 구해 오라” 서불은 산 넘고 물 건너 남해 금산까지 찾아왔지만 불로초는 구하지 못했다. 늙지 않게 해 주는 풀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한동안 사냥만 즐기다가 금산을 떠나면서 바위 위에 글을 새기고 갔다. 이런 이야기를 간직한 바위가 남해에 있다. 이 문자는 고대 역사를 밝히는데 귀중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유적이다. 바위가 거북 모양을 하고 있어 ‘거북바위’라고 부른다. 이곳 암각화는 관심있는 학자들의 현장조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서불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왔다가 사냥을 즐기다가 갔다”라고 쓴 글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들도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문자라고 하는 사람, 고대 거란족의 문자라고 하는 사람, 훈민정음 이전의 한국 고대문자라는 사람, 산스크리트 계통의 글자라고 주장하는 사람, ‘귀인의 사냥터’라는 그림 표지라고 주장하는 사람 등등 아주 많은 학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정답은 ‘알 수 없다’가 정확하다. 서불 일행은 불로초를 구하려 온 것이 아니라 망명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진나라의 혹정을 피해 망명한 자들이 한반도에 건너와 일부는 일본으로, 일부는 남해안에 그대로 정착했을 가능성도 있고, 그 중 일부가 서불 일행이라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산을 비롯해 경남·제주 일원에는 신선사상이나 서불과 관련된 전설이 숱하다. 이처럼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거북바위 옆에는 거대한 바위벼랑이 있다. 그위로 올라가면 두모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편 두모마을 표지석 바로 앞집의 고구마 밭이랑에는 비늘 달린 짐승의 몸통 같이 희귀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이 비늘무늬 바위는 거북바위, 동이바위와 더불어 상주리 일대 바위 문화의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
봄이 온다
겨울이 가서 오는 봄이 아니라
오기로 해서 오는 봄이 아니라
보풀한 흙 내음에
갯버들 움트는 가지에
살랑살랑 간지런 바람에
가슴 에이는 겨울은 묻는다
아니 실상
겨울은 에이지만 않았다
마른잔디에 어린 겨울 아침 서릿발
맨발로 가질 때
잡스러움은 가라
내 구디굳은 올곧음이였다
불을 질러라
그래도 남은 허접함은
달불에 남김없는 끄으름으로 지우고
다시 채울 꿈꾸는 봄을 맞으리
時間은 我執이다
겨울 밤 방안에 흐르는 건
문틈으로 부지런한 열교환
마당에 시린 하늘 마른 잔디에
묻은 서리 맨발로 딛고 나는 시간을 턴다
기억되어지길 기꺼워하고 바랬던 시간은
뒷밭 솔숲을 스치우며 달아나는
겨울 바람인가
찾지 않는다
맹서는 호흡하는 자의 짐이 되고
사랑한다 하는 말은
교환할 수 있는 조건이 비었다
바람은 발 아래 쓰러지고
짐 된 호흡은 길이 되어 걸음에 두니
달빛은 까닭 없이 발등에 실린다
사랑한다는 말
교환 요구 조건에 인과 되기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호흡이라
차라리 바람 이는 어스름 겨울 저녁 풍경이 되리다
고요한 햇살
십일월의 저녁 나절
이미 빛바랜 잎새
바람에 떨고 있다
어디선가 이는 찬바람
해거름 빈 마당에 차고
감나무 시린 잎새
어둠에 떨어 진다
이십오년만에 만난
아재는 내 디엔에이의 화석
떨지 못한 피멍에 들었다
서리 내리는 십일월에
푸르지 못 햇던 탓은 헛되고
차마 떨지 못해 떨며
마르는 시간이 아프다
가을 노을
천년이 지나도 저 빛깔 지닐 것이라
나 어릴적
아버지가 이끄는 소구르마 볏단위에 누워 바라보던
가을 해거름 서녘 들판의 하늘의 붉음은
이 저녁에도 그대로이듯 천년 후에도 그대로 일꺼라
오늘에 달라진 건
싹 비어내던 들판엔 비닐바다 이루고
산그림자 얹히던 노을은 아파트 틈에 끼일 뿐
노을 빛깔은 그대로 이라
천년 후에 달라질 껀 몰라도
노을 빛깔 천년 후에도 그대로 일꺼라
보오매 보임이 없고
들으매 들림이 없고
만지매 잡힘이 없다
내 눈은 흐려지고
내 귀는 지쳐가서
내 살은 오래 익었어라
시간의 강에 다리가 놓였지만
건너온 강은 되건너고 싶잖다
아니 되건너도 없을 것이
코끝을 에우던 입김이라
강바람에 묻어 흩어지고
나는 아직 들판을 지르고 있다